지난달 23일 오전, 부산항 연안 여객터미널에서 작은 어선에 올랐다. 배는 30분간 잔잔한 파도를 가로지르며 멀리 나아갔다. 육지와 점점 멀어지더니 이윽고 바다 한가운데 이르자, 멀리 '탐해 3호'의 거대한 선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전장 92미터(m)에 폭 21m, 무게 약 6900톤(t). 취항 직전의 '최신식' 탐사선다운 깨끗하고 새하얀 외관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탐해 3호는 대륙붕, 대양, 극지 등 전 세계 해역을 항해하며 바닷속에 묻힌 해저 자원을 탐사하는 물리탐사 연구선이다. 선박 설계·건조부터 운영까지 전체 R&D(연구·개발)를 주관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자원연·KIGAM) 해저지질에너지연구본부 해저지질탐사연구센터는 "탐해 3호가 지난 10년간 전세계를 통틀어 유일하게 새로 건조된 최신 탐사 연구선"이라고 밝혔다. 그야말로 '세계 최첨단' 물리탐사선이라는 뜻이다.
어선에서 내려 약 1m 높이의 사다리를 타고 탐해 3호의 선체에 올랐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마주한 건 임무 대기 중인 탄성파 탐사 장비들이었다. 김병엽 해저지질에너지연구본부장은 칭칭 감겨 있는 노란색 탄성파 스트리머(streamer)와 그 너머의 에어건(air-gun) 장치를 가리키며 "탐해 3호의 핵심 연구 장비"라고 말했다.
탐해 3호는 '해양 탄성파'를 분석하는 데 최적의 장비를 갖췄다. 바닷속에서 공기 폭탄을 터뜨리면 그로 인해 발생한 파동이 해저 바닥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지질 내부로 전달되는 파동을 '탄성파'라고 부른다. 탄성파는 지층 경계면과 부딪히면서 반사되는데, 이때 경계면을 이루는 물질의 상태가 고체인지, 액체인지 혹은 기체인지에 따라 반사되는 반사파(reflected wave)가 달라진다. 이를 분석하면 석유(액체), 가스(기체)처럼 땅과는 성질이 다른 '어떤 물질'이 바닷속에 존재함을 추측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공기폭탄을 터뜨려 파동을 만드는 장치가 에어건이다. 에어건이 발생시킨 탄성파를 측정하는 장치는 스트리머다. 스트리머에는 전자 지진계(수진기)가 들어있어, 발파로 발생한 파동을 감지한다. 탐해 3호에는 8개의 스트리머가 설치돼 있다. 6㎞ 길이의 스트리머 8개를 100m 간격으로 바닷속에 나란히 늘어뜨리면, 여의도 면적 1.5배(축구장 590개)에 달하는 해저 영역을 마치 거대한 붓으로 땅을 쓸어내리듯 한 번에 탐사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탐해 3호엔 해저면 바닥에 떨어트려 이때 생긴 파동을 기록해 지질 상태를 알아내는 '해저면 노드형 수진기(OBN)' 400대가 실렸다. 내빙 기능도 탑재돼 있어 극지 등 극한 환경에서도 탐사가 가능하다. 지질자원연은 "탐사 장비의 비율이 전체 장비의 50% 수준으로, 다른 종합연구선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며 "말 그대로 바다 위 연구소"라고 설명했다.
건물 약 6층 높이의 선체엔 총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선실을 갖췄다. 선장급 선원을 위한 선실 4실, 단기간 머무는 연구원을 위한 2인용 선실 11실, 상시 거주하는 선원을 위한 1인용 선실 24실 등이다. 이 밖에도 식당, 휴게실, 치료시설, 체육관, 사우나 등이 마련됐다.
탐해 3호는 지난달 31일 포항 영일만항에서 공식적인 임무 시작을 알렸다. 1996년 취항 이래 27년간 해저 탐사를 도맡아온 물리탐사선 '탐해 2호'의 뒤를 이어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한다. 국내 대륙붕의 석유·가스 자원을 탐사하는 한편, 탄소중립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이산화탄소 해저 저장을 위해 '저장 유망지'를 찾는다. 또 북극 자원 발굴을 위한 국제 공동탐사까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 본부장은 "이미 미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의 기관·산업체에서 탐해 3호 공동 활용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며 "연구 목적의 사용을 우선시하되, 국제협력 차원에서의 활용 방안을 차근히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