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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R에서 쏙 빠진 전세대출.."이러니 가계대출 관리 안 되지"━
28일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금융권 신규대출 기준으로 DSR가 적용된 대출은 전체의 약 26.7%였다. DSR은 금융당국의 가계부채의 주요한 관리 수단으로 총 대출액이 1억원을 넘어서면 연간 갚아야 할 원리금이 연소득의 40%를 넘지 못하도록 한 제도다. 효과적인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선 대부분의 대출이 DSR에 포함돼야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못하다.
특히 전세대출은 신규 대출의 14.9%에 달하지만 DSR 적용은 받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전세대출을 받은 사람이 주택담보대출 등 다른 대출을 받는 경우엔 전세대출 이자가 DSR에 포함 되지만 반대로 다른 대출을 받은 사람이 전세대출을 추가로 받으면 원금 뿐 아니라 이자까지도 대출한도를 책정할 때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전세대출이 DSR 규제를 무력화한다는 우려에 따라 금융당국은 올해 업무계획에 '유주택자의 전세대출 이자 상환분 등에 DSR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무주택자도 아닌 유주택자의, 원금도 아닌 이자를 규제하겠다는 내용임에도 아직 구체적인 도입 방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박춘성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제도는 주택거래를 쉽게 만들어 가계부채와 주택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세대출이 임대인의 부채이자 규제밖 유동성 공급 채널로 작동하고 있다"며 "전세대출이 갭투자 등을 통해 주택거래를 쉽게 만들어 주택가격 가계부채 상호작용에 일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 쉬운 전세대출 보증→전세대출 확대→갭투자 증가→가계부채 확대와 집값 상승'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만큼 DSR 규제를 통해 전세대출을 통한 유동성 공급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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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기 수단 악용"…전세대출 5억도 '척척', 집값 상승 부추긴다━
28일 부동산 R114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 3.3㎡당 중위 전셋값은 1385만원이다. 지난해 7월 1118만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상승세다. 지난달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54.6%로 3개월 연속 오름세다.
지난해 5월 이후 1년간 꾸준히 전셋값이 오르면서 매매가와의 차이가 좁혀졌다.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갭투자'가 다시 살아날 조짐도 보인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수도권을 중심으로 갭투자가 늘었다. 갭투자는 주택 가격 상승을 자극하는 요인이다. 가령 전세가율이 80%에 달한다면 집값의 20%만으로 주택을 매입할 수 있다. 갭투자는 주택 거래를 쉽게 만들고 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유입시킨다.
전셋값 상승과 갭투자 이면에는 전세대출이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 등 공공기관 3곳이 전세대출에 보증을 하기 때문에 대출자들은 손쉽게 자금을 구할 수 있다. 집주인이 높은 전셋값을 불러도 수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전세대출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 대출규제도 받지 않기 때문에 다른 대출이 있어도 받을 수 있다.
특히 전세대출 보증 요건은 계속 완화돼왔다. 현재 보증 한도는 최대 5억원이며 부부합산 소득 1억원 초과, 보유 주택 가격 9억원 초과의 1주택자에게도 전세자금 대출 보증이 허용된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된 전세대출이 오히려 집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해 '내 집 마련'의 꿈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이다. 경실련은 "서민을 위해 사용돼야 할 전세대출이 지금도 투기꾼의 갭투기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면 정부는 이를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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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출 최대 국민은행도 "전세대출 규제 필요해"…왜?━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전세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6257억원 줄어든 117조9189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9월(134조1976억원) 이후 19개월 연속 감소세다. 같은 기간 16조 28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빠져나갔다. 올해 들어서도 3조 1416억원 감소했다.
전세대출이 꾸준히 줄어드는 것은 전세사기 여파와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2022년 이후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면서 청년을 중심으로 전세 수요가 줄고 월세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실수요자 중심으로 전세대출을 조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라며 "전세대출은 주거취약층의 중요한 사다리가 되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전세대출 잔액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과 KB금융그룹은 여러 차례 전세대출 우려를 공식적으로 표명해왔다. 한국 주거용 건물의 문제는 대부분 다주택 소유자 또는 임대주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갭투자, 전세를 활용한 부분인데 본인의 신용으로는 대출을 못받지만 전세대출을 통해 LTV(주택담보인정비율),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은 돈을 가지고도 전세를 끼고 집을 살 수 있고 세입자는 대출 규제를 받지 않고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어서다. 예컨대 현금 3억원을 가지고 있는 A씨는 전세 7억원을 끼고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고 세입자는 자기 돈 2억원에 전세대출 5억원을 받으면 7억원짜리 전셋집에서 살 수 있다. 반면 A씨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같은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려면 LTV, DSR 규제로 7억원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
KB경영연구소도 수차례 전세대출에 규제 필요성을 지적했다. 지난해 6월 보고서를 통해 "전세자금대출이 전세가격을 밀어 올리고 투자 수요 증가 요인으로 작용한 면도 있다"면서 "전세자금대출을 DSR에 포함하고, 매매가 대 전세가(매매전세비)가 70% 이상인 주택에 대해선 전세자금대출을 제한하는 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12월 터진 '빌라왕 사태' 이전에도 KB경영연구소는 전세대출에 우려를 제기했다. 같은 해 4월 KB경영연구소는 두 차례 보고서를 통해 전세대출이 당초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과도한 대출로 인한 유동성 증가와 이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전세대출을 DSR에 포함하고, 임대인 대상 임대보증금보증 의무 가입을 확대해야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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