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좀 늘려주세요" 법원 아우성에도…정쟁 밀려 또 증원 물거품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정진솔 기자 | 2024.05.29 04:00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법관 정원을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늘리는 법관증원법(판사정원법 개정안)이 결국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했다. 10년째 그대로인 판사 수가 또 제자리에 머물게 되면서 법원 내부의 실망감이 역력하다. 재판 지연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국회가 외면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28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판사정원법 개정안은 이날 열린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본회의 전 법안 처리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으면서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개정안은 2023년부터 5년에 걸쳐 50명, 80명, 70명, 80명, 90명씩 총 3584명으로 차례로 수를 늘리는 내용이 골자다. 현행 판사정원법은 '각급 법원 판사의 수는 3214명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달 초 이 개정안이 발의된 지 1년5개월 만에 법사위 소위를 통과하면서 법관 증원이 실현될 것이라는 법조계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여야가 21대 국회 마지막까지 극한 대립을 이어가면서 '정쟁'에 발목 잡혔다. 야당이 검사 정원도 같이 늘리자는 데 반기를 들고 나선 것도 걸림돌이 됐다. 통상 판사 수가 늘어나면 검사 수도 연동돼 함께 늘어나는데, 민주당 내에서 검사 증원에 대한 반대 의견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법관증원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재판 지연 등으로 인한 국민 피해를 생각하지 않고 정쟁에만 몰입한 국회의 모습을 봐서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법관증원법이 폐기되면서 법원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법관 신규 임용 대상자 명단을 오는 10월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늦어도 6월 말에는 선발 규모를 확정해야 한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개정안을 재발의한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올해 신규 법관 수는 두 자릿수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에 따라 최대 109명까지 선발할 수 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 여유 인원을 남겨 놓기 때문이다. 매년 130명 수준으로 선발한 것과 비교하면 30~40명가량이 줄어드는 셈이다.


20년 이상 법원에 근무한 한 부장판사는 "재판 지연 해결은커녕 현상 유지를 위한 숫자도 못 맞추게 된다"며 "쉽게 말하자면 판사 1명이 사건을 맡는 단독재판부 30~40개가 사라지는 것이고 볼 수 있다. 각급 법원에서 재판부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판사 정원 증원을 예상하고 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던 법원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라며 "현 인력의 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 법원 운영에 차질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2대 국회 원 구성과 법안 재발의 과정 등을 거쳐야 해 판사 증원 문제가 언제 해결될지 기약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획재정부 직제협의부터 법안 제출까지 모든 절차를 다시 진행해야 해서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사법부가 법률안 제출권이 없는 만큼 기재부와 행정부, 국회를 설득해 22대 국회에서도 법안이 발의되고 통과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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