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삼성의 쇄신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 2024.05.23 05:40
삼성전자가 지난 21일 원포인트 인사를 통해 반도체 사업의 수장을 교체했다. 지난해 15조원에 육박한 대규모 적자와 AI(인공지능) 반도체의 핵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주도권을 경쟁사에 내주고 고전하고 있는 상황 등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한국 1위 기업 삼성전자가 정기 임원인사가 아닌 이례적인 깜짝 인사를 통해 임기 중 대표이사를 바꾼 것은 충격적인 변화다. 삼성전자는 인사의 목적으로 '쇄신'을 꼽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쇄신(刷新)'을 '그릇된 것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함'이라고 정의한다.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 임직원이 각오를 새롭게 하겠다는 삼성의 설명에 부합하는 단어다.

삼성은 쇄신을 통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1993년 신년사에서 "대나무도 매듭이 있어야 잘 자라듯, 삼성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성과 평가를 통한 새로운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몇달 뒤 '삼성 신경영'으로 이어졌다. 최근 수년 간 '삼성이 예전같지 않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쇄신 카드를 꺼내든 것은 다행이다.

쇄신의 시작은 '과거와의 단절'이다. 이건희 회장은 (현재 상황을) 과거의 수치와 비교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과거의 연장선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이는 예외 없이 무사안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과거에 대한 부정 없이는 개선도 없다'는 그의 철학은 경영자들이 되새겨야 할 금언(金言)이다.

다른 뜻을 담고 있는 '쇄신(碎身)'에도 울림이 있다. '뼈를 가루로 만들고 몸을 부순다'는 의미로, 정성으로 노력함을 이르는 말이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삼성전자가 '세계 1위' 자리와 '초격차'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분골쇄신(粉骨碎身)'의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삼성전자 전 임원들의 '주6일 근무제' 도입도 이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새롭게 하거나 부수는 쇄신에는 공통적으로 고통이 수반된다. 하지만 고통을 주는 적절한 자극과 스트레스는 조직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생리학의 '호르메시스(Hormesis) 효과' 이론은 미량의 독소나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높여 오히려 생명체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한다.

삼성에게 현재의 위기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삼성전자의 새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이 된 전영현 부회장은 벤치에 앉은 '올드보이' 감독이 아니라, '구원투수'이자 새로운 게임의 공격을 맡은 '클린업 타자'다.

그는 숫자만 챙기는 경영자가 아니다. 2015년 1월 전영현 당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은 사장 승진 후 처음으로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5' 현장을 찾았다. 그는 내구성을 확인하겠다며 새로 출시한 휴대용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제품을 직접 전시장 바닥에 떨어뜨렸다. 사장의 예고 없는 '드롭 테스트'에 임직원들은 사색이 됐다. 다행히 가슴 높이에서 떨어진 제품엔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전 부회장의 '현장중심', '완벽주의' 경영이 삼성전자 반도체의 도약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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