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이창용 총재의 2년, 달라진 한은

머니투데이 박재범 경제부장 | 2024.05.14 04:25
# '남대문 출장소' '한은사(韓銀寺)' '남산골'…. 한국은행을 향한 조롱 섞인 표현들이다. '남대문 출장소'엔 과거 정부의 꼭두각시 역할을 했던 데 대한 자조(自嘲)도 담겨 있다.

'한은사' '남산골' 등은 그 반작용이 만들어 낸 결과다. '독립성'만 부여잡다 단절·고립됐다. 물가 안정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다. 통화 정책을 등한시 한 적도 없다.

한국은행법상 주어진 '금융시장 안정'을 주된 책무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유동성 공급을 위한 권능을 갖고 있는 데도 바라만 봤다.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가 아닌 '최종 방관자'로 살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가 좋은 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돈을 퍼부으며 적극적 행동을 취할 때 한은은 극도로,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다.

정부가 읍소해도 중앙은행이 할 일이 아니라며 벽을 쳤다. 전시 상황에서 정부는, 한은의 도움 대신 우회적 경로를 찾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했다. 유럽 위기 때도, 코로나 팬더믹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Whatever it takes)". 2012년 유로존 재정위기 때 나온 마리오 드라기 ECB(유럽중앙은행) 총재의 발언이다. 목적은 당연히 '금융시장 안정'.

2008년 연준, 2012년 ECB 모두, 중앙은행의 임무 완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게 글로벌 기준에 맞는, 현대 중앙은행에게 요구되는 역할이자 책무다.

2022년 가을, 레고사태 때다. 채권 시장발 리스크가 퍼지며 시장이 흔들렸다. 유동성 문제가 불거진다. 이 순간 달라진 한은이 등장한다. 유동성 공급을 위한 정책 수단을 직접 쏟아낸다.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대출적격담보 증권 대상 확대 등이다.

1년 뒤엔 아예 대출제도를 개편한다. 저축은행·새마을금고 등 비은행에도 긴급 여신을 지원한다. Fed와 ECB가 했던 것, 우리가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던 것을, 적극적으로 한다. 과거 방패로 내세웠던 한은법을 이제 권한 행사의 무기로 삼는다.

한은법 80조(영리기업에 대한 여신)에 근거해 2금융권에 유동성을 공급한다. '최종 방관자' 꼬리표를 떼고 '최종 대부자'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 이창용 한은 총재 2년이 만든 변화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IMF(국제통화기금) 아태국장 등의 경험이 토대가 됐다.

정부와 정보를 공유하며 신뢰를 쌓고 정책 수단을 다양하게 만든다.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교조적 해석을 한마디로 반박한다. "오히려 한은이 정부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하지 않나".

실제 정부, 금융당국은 그 효과를 체감한다. 정책 방향을 세울 때 한은의 보고서, 데이터 등은 좋은 재료이자 조미료가 된다. 한은의 정책 수단은 정부의 선택지를 넓힌다. 당국자들은 한은과 호흡을 '역대급'이라고 평한다.

한은도 땅에 발 딛고, 현실을 체감한다. 정책의 배경 등을 이해하다보니 정책 아이디어를 먼저 고민한다. F4(경제부총리·금융위원장·금융감독원장·한은총재) 못지않게 실무진의 만남과 교류도 활발하다.

# '최종 대부자' 위상을 되찾은 이창용의 한은은 '최초 발의자' 역할도 자임한다. 뛰어난 '맨 파워'를 토대로 한 싱크탱크 역할이다. 한은에 따르면 이 총재 취임 후 2년간 나온 BOK이슈노트는 84건으로 2020~2021년 발간분(49건)의 2배 가량 된다.

이 총재는 논란을 피하기보다 오히려 즐긴다. 보고서의 결론을 더 선명하게 쓰라고 주문한다. 공들여 연구하고도 비판이 두려워 애매하게 끝맺는 것을 지양하라고 독려한다. 최근 이슈가 됐던 '외국인 돌봄 관련 최저임금 차등보고서'가 대표 사례다.

일각에선 통화정책보다 구조개혁을 언급하는 데 대한 지적도 하지만 이 총재의 소신은 분명하다. 재정·통화정책은 단기적 효과에 그칠 뿐 장기적·근본적 해법은 구조개혁이라는 것. 한은을 작은 울타리에 가두지 않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 거침없는 발의로 몰아친다.

발제를 정부가 소화해 정책 일부가 되면 그게 이창용이 말한 한은의 독립성 실현이다. 이창용 2년, 한은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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