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면 더 생각나" 장기기증자 가족 눈물 닦아준 새 '가족'

머니투데이 최지은 기자 | 2024.05.13 06:00

장기이식 통해 교류 맺는 장기기증자 가족·장기이식자... 더 풍성한 5월

장기기증으로 또 다른 가족이 된 양이순·김지은·한필수씨와 홍라율 양의 모습./사진=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딸을) 잊어버리려고 해도 5월이면 자꾸 생각나요. 생각이 안 날 수가 있겠어요? 더 보고 싶죠."

어버이날이던 지난 8일, 한필수씨(84)는 휴대전화 너머로 이 말을 전한 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한씨의 딸 고(故) 한미영씨(당시 37세)는 2009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뇌사상태에 빠졌다. 평소 자신보다 부모와 가족을 더 살뜰하게 챙기던 막내딸이었다. 딸은 생전 장기기증을 신청했다. 하지만 가족의 입장에서 딸의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말을 선뜻 내뱉기는 어려웠다. 딸을 2번 떠나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씨는 아내·아들과 긴 시간을 고민한 뒤 딸의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그는 "장기기증을 받지 못해 세상을 떠나는 청춘들을 보며 딸의 뜻대로 장기기증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딸은 장기기증으로 5명의 생명을 살린 뒤 하늘로 떠났다.

딸의 모습이 떠오른 듯 착잡하게 말을 이어가던 한씨에게 장기이식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한씨의 목소리가 이내 밝아졌다. 한씨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장기이식자를 만나 교류의 시간을 갖고 있다.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 제31조(비밀의 유지)에 따르면 장기기증자와 장기이식자는 서로의 정보를 알 수 없다. 한씨 역시 딸이 어떤 장기를 기증했는지, 누구에게 기증했는지 모르지만 장기이식자를 만날 때마다 딸이 어디에선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한씨에게 장기이식자는 딸의 존재를 느끼게 해 주는 또 다른 '가족'이다. 최근 그는 심장이식을 받은 뒤 첫 아이를 임신하고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둔 김지은씨(35)가족을 만났다. 김씨와 그의 딸 홍라율양(4)은 한씨 부부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줬다.

한씨는 "김씨가 임신해서 아이도 갖고 잘 사시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며 "장기 이식을 받은 분들을 만나면 우리 딸이 어디에서인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장기이식자분들과의 교류 행사는 빠지지 않고 모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장이식자 김지은씨(35)가 장기기증인 가족에게 보낸 손편지./사진=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우리 아들 같다'며 맞잡은 두 손…심장 이식으로 새 삶 찾고 새 가족도 얻은 김상훈씨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 공간앞에 함께 선 (왼쪽부터) 장기 기증자 가족 홍우기, 김일만, 강호 씨와 심장이식인 김상훈씨(28)./사진=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2020년 5월 심장을 이식받은 김상훈씨(28)는 장기기증자 가족 3명에게 어버이날 카네이션과 편지를 손수 전달했다. 이들은 하나뿐인 아들을 떠나보내며 장기기증을 결정한 아버지들이다.

김씨는 심장 이식을 받기 전 확장성 심근병증을 진단받았다. 심장 근육이 커지고 부풀어 오르면서 심장 기능이 저하돼 다른 장기들로 피를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병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받던 도중 주치의가 홀로 있던 김씨를 불러냈다. 주치의는 "심장이 10%도 기능을 못 하고 있다"며 "심장 이식을 받지 않거나 좌심실 보조장치를 달지 않으면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전했다.

당장 맞는 심장 기증자를 찾을 수 없어 김씨는 좌심실 보조장치를 달았다. 심장을 뛰게 하는 기계 배터리를 24시간 메고 다녀야 하고 펌프를 달기 위해 배에 낸 구멍이 감염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해 일상 활동이 쉽지 않았다.

김상훈씨(28)는 2020년 5월 심장 이식을 받기 전 확장성 심근병증을 진단받았다. 심장 근육이 커지고 부풀어 오르면서 심장 기능이 저하돼 다른 장기들로 피를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병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주치의가 홀로 있던 김씨를 불러냈다. 주치의는 "심장이 10%도 기능을 못하고 있다"며 "심장 이식을 받지 않거나 좌심실 보조장치를 달지 않으면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전했다. 투병 생활을 하던 김씨의 모습./사진=김상훈씨 제공

총 14개월의 투병 생활 뒤 김씨는 심장을 이식받았다. 이후 투병 생활로 다니지 못했던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취업도 할 수 있게 됐다.

장기기증자 가족들은 김씨를 보며 자신의 아들을 떠올렸다. 김씨는 "아들과 내가 너무 비슷하다며 몇몇 분들은 우시기도 했다"며 "다음에도 꼭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해주셔서 그때는 제가 먼저 아들처럼 이야기도 들어드리고 질문도 드리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5월은 저와 친아버지의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고 심장을 이식받은 달이기도 하다"며 "앞으로는 5월이 되면 심장을 기증해 주신 분과 그 가족분들도 함께 떠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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