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배터리 밸류체인의 실적 악화 요인은 전기차 캐즘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기차 구매 수요가 감소하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재고조정과 생산 조절에 나섰다. 전방 시장 사업환경 변화은 배터리 업계의 어닝쇼크로 이어졌다. 위기의 양상은 완성차와 다르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계는 전기차 수요가 둔화해도 하이브리 자동차와 내연기관 자동차 등 포트폴리오가 있지만 배터리 밸류체인에 속한 기업들은 전기차 시장이 무너지면 대안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이제 막 시작된 캐즘 발 충격의 끝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3~4년 뒤를 예측하는 전문가가 있는 반면, 전기차 자체가 캐즘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연기관차 만큼 대중화된 시장을 형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관론도 존재한다. A 배터리 소재사 대표는 "누군가 그 시기를 '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SK온은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비우호적인 업황에 대응하고자 유럽과 중국의 설비 증설 시점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겠다"고 했다. LG엔솔은 올해 작년과 유사한 10조원 수준의 설비투자를 계획했지만 이를 재검토하고 있다. 양극재 업계도 일제히 "배터리 제조사 투자속도에 맞출 것"이라는 입장이다. 수요 부진에 빠진 전기차 배터리 대신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LG엔솔은 미국에 첫 ESS 배터리 전용 공장을 착공했고, 삼성SDI는 ESS 배터리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시간벌기용 대책일 뿐이라는 것이다. 전기차 수요가 되살아나지 못하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캐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기차의 태생적 문제로 남아있는 충전시간과 주행거리를 개선할 기술이 최대한 빨리 나와야 하고 차량 가격도 내연기관차 수준으로 낮아져야 한다"며 "결국 원가와 R&D, 공정을 모두 잡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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