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안대 낀 선수들 슛…그 축구공에선 쇳소리가 난다[르포]

머니투데이 김지은 기자 | 2024.04.24 06:00

올해 첫 개최 '장애인 축구대회'…40분간 명승부 "저 선수 누구" 관객들 감탄


"자자자자. 공 움직인다. 가자. 가자."

지난 20일 오전 11시쯤 서울 송파구의 한 축구장. 빨간 유니폼을 입은 한 남성이 양발로 공을 차며 빠르게 돌진하더니 골대를 향해 슛을 날렸다. 관중석 곳곳에서 "저 선수 누구냐" "대박이다"라는 감탄이 쉴새 없이 터져나왔다.

이 경기는 기존 축구 경기와 차이가 있다. 축구공은 움직일 때마다 묵직한 쇠 소리가 들렸다. 선수들은 모두 검은색 안대를 쓰고 뛰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시각장애인으로 오직 축구공 소리와 감독 지시에만 집중해 경기를 하고 있었다.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올해 처음 송파구에서 열린 '장애인 축구 대회'에서는 40분 동안 명승부가 펼쳐졌다. 시각장애인 선수들은 축구를 통해 관계를 맺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파란색 펜스, 검은색 안대, 골대 뒤에 숨은 가이드



이날 경기에는 서울 시각장애인 복지관 소속 축구 동호회 '프라미스랜드'를 비롯해 경기도팀, 경북팀이 출전했다. 전반전, 후반전 각각 15분에 휴식 시간 10분을 합쳐 40분 동안 경기가 이뤄졌다.

시각장애인 축구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소리가 중요하다. 감독은 경기장 중간에 서서 "앞에 한 발 더" "슛이야 슛" "이번 공은 흘려" 등 수비수에게 전반적인 움직임을 지시했다.

골대 뒤에는 가이드가 서 있었다. 뒤에서 경기 상황을 지켜보면서 공격수에게 어디 방향으로 뛰어야 할지, 공과 골 사이는 몇 m 정도 되는지, 누가 공을 잡고 뛰는지 등을 실시간으로 말해줬다.

시각장애인 축구 경기는 검은색 안대를 쓴다. 축구공은 움직일 때마다 묵직한 철 소리가 들린다. /사진=김지은 기자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선수들은 "보이" "보이"를 외치기도 했다. 공을 뺏으러 올 때 아무 말 없이 오면 충돌이 생기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규칙이었다. "보이" 소리를 내지 않고 공을 뺏으면 반칙이다.

경기장 양 옆에는 파란색 펜스도 설치되어 있었다. 선수들 부상을 방지하고 공이 경기장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선수들은 축구공이 펜스를 맞고 튀어나가면 소리를 듣고 공 위치를 파악하기도 했다.


선수들이 검은색 안대로 눈을 가린 이유는 공정한 게임을 위해서다. 시각장애인 중에는 빛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선수별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눈에 스티커를 붙이고 안대를 덧씌우는 등 이중으로 눈을 가렸다.



시각장애인 축구, 서로 배려하며 함께 달리는 스포츠



프라미스랜드 축구단 모습. 이들은 서로의 어깨를 잡고 함께 이동한다. /사진=김지은 기자

2012년 창단된 프라미스랜드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필드에 뛰는 선수 4명은 시각장애인이지만 골키퍼는 비장애인이다. 과거에 봉사활동을 왔던 한국체육대학교 학생이 현재 골키퍼를 맡고 있다.

선수들은 축구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축구를 한 40대 시각장애인 양정훈씨는 "장애인은 운동을 하고 싶어도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으면 어려움이 있다"며 "축구팀 활동하면서 긍정적인 마인드도 생기고 다양한 사람도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15년 동안 취미 생활로 축구를 했다는 50대 최영찬씨는 "눈을 가리고 뛴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며 "다른 스포츠에 비해 소리에 예민한 운동이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훈련하고 감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 내에 마련된 시각장애인 전용 축구장은 송파구가 유일하다. 프라미스랜드는 2주에 한번씩 경기장에 모여 연습을 한다. 선수들은 감독의 움직임을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동작을 익힌다.

이형주 프라미스랜드 축구단 감독의 목표는 꾸준함이다. 이 감독은 "지금 선수들과 10년 넘게 활동 중인데 새로운 세대가 영입됐을 때도 모두 함께 어울리며 재밌게 운동하고 싶다"며 "내가 한 발 더 뛰면 다른 팀원이 편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서로 배려하는 팀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오전 11시쯤 서울 송파구의 시각장애인 전용 축구장. 시각장애인들이 검은색 안대를 쓰고 축구 경기를 하고 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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