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명품족들이 일본으로 몰려가고 있다. 엔화 가치가 3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미국은 물론 유럽보다 저렴한 가격에 명품을 구매할 수 있어서다. 여행객들 사이에선 "일본에서 가방·시계 등 고가품을 쇼핑하면 비행기 값을 건진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돈다.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미국은 물론 유럽 관광객들까지 일본으로 명품 쇼핑을 떠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주요 명품 브랜드 제품의 미국 판매가(세전)와 일본 면세가를 비교했더니 샤넬·태그호이어 등 일부 고가품의 경우 1000달러(137만원) 이상 차이가 났다고 전했다.
까르띠에 러브 팔찌와 버버리 트렌치코트 역시 일본에서 구매하면 미국보다 500달러 안팎 싸다. 디올 슬링백 펌프스, 구찌 가죽 로퍼, 프라다 선글라스 등의 일본 면세가와 미국 판매가는 각각 100~200달러 차이 난다.
이는 미 달러화 대비 일본 엔화 가치가 154엔대로 1990년 이후 3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최근 엔화 약세는 달러화 강세에 따른 것이지만, 다른 주요 통화와 비교해도 엔화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약 45% 하락했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플레이션(화폐 가치 하락에 따른 물가 상승) 상황이 심각해지자 미국·유럽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했지만 일본은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고수했고 그 결과 엔화 가치 폭락 사태를 맞아야 했다.
주요 명품 브랜드들은 차익 거래를 막으려고 전 세계 제품 가격을 비슷한 수준으로 조정하지만 최근 엔화 가치가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하면서 이를 제 때 반영하지 못한 것도 일본과 미국·유럽 간 가격 차이를 키웠다. 이미 지난 몇 년간 가격을 인상한 브랜드의 경우 추가로 가격을 올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조정을 못한 측면도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중국인 단체 관광객으로 꽉 찼던 일본 도쿄 긴자 명품거리가 서양 관광객으로 메워진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블룸버그는 "일본 도쿄 내 명품 쇼핑지구인 긴자에선 최근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가 끊이지 않고 들린다"며 "팬데믹 이전 부유한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 내 명품 쇼핑을 주도했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세계 최대 명품 기업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의 올 1분기(1~3월) 일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2% 급증한 것도 엔저에 따른 명품 쇼핑 수요가 몰린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같은 기간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매출이 중국의 수요 둔화로 6%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데보라 에이트켄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명품 담당 수석 애널리스트는 "명품 브랜드들은 주로 새 제품을 출시하거나 한정판 컬렉션을 발표하면서 가격 조정에 나서지만 일본의 경우 환율 변수가 커지면서 고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기회가 생긴 것"이라며 "지금 일본에서 명품을 구입하면 사실상 할인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