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보호가 사라진 피해자보호명령

머니투데이 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 2024.04.17 03:45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처벌법')은 '피해자보호명령'이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 과거에는 피해자보호를 위해 가정폭력범죄로 법원에 송치된 사건에서 판사가 심리를 거쳐 보호처분을 내리는 규정만 마련되어 있었는데, 2011년 7월 경 피해자가 폭력행위자와 시간, 공간적으로 밀착되어 즉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을 때 수사기관이나 소추기관을 거치지 않고 피해자 스스로 안전과 보호를 위해 법원에 직접 보호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명령 위반자를 형사처벌하여 피해자를 강하게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대법원 2021도15745 판결 등).

그 취지를 고려하면 피해자보호명령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최근 대법원은 그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한 결정을 내렸다(대법원 2024. 3 29. 자2024터2 결정).

남편이 늦게 귀가해 스마트폰 영상을 보는 등 시끄럽게 하여 발달장애아인 자녀의 수면을 방해하고 평소 폭언, 집기파손, 협박, 허위신고를 일삼는다는 등의 이유로, 부인이 '안방 침실에서 퇴거', '자녀에 대한 친권행사 제한'의 피해자보호명령를 청구했는데, 대법원은 피해자보호명령의 발령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고, 심리절차도 위반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보호명령을 내린 원심 판결을 파기한 것이다.

먼저 발령 요건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피해자보호명령청구의 전제가 되는 가정폭력행위가 특정되지 아니하거나 행위자가 그러한 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 또는 행위자의 행위가 가정폭력처벌법이 정한 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행위자에 대하여 피해자보호명령을 발령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배우자가 청구할 당시 구체적인 가정폭력범죄의 일시, 장소, 태양 등이 특정되어 있지 않고, 욕설을 하거나 큰 소리로 스마트폰 영상을 시청한 행위는 욕설의 내용이나 영사 소음의 크기, 시청 시간, 수면 방해의 정도 등에 따라 폭행죄, 학대죄, 협박죄, 모욕죄 등의 구성요건 충족 여부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배우자의 주장만으로 가정폭력범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절차와 관련해서도 남편이 가정폭력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이상 변명의 기회를 주거나 추가 조사도 없이 심리를 종결한 직후 피해자보호명령을 고지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가정폭력처벌법은 1998년 7월 경부터 시행되었다. 가정폭력은 지속적이고 상습적으로 자행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사회적 폭력보다 더 심각한 문제임에도, 가정내의 문제로 치부되어 사회적으로 방치되어 왔기에 사회와 국가가 적극 개입하여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제정되었다. 법률은 주로 이미 발생한 사태를 사후적으로 해결하는 기능을 하고 있으나, 가정폭력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피해자보호명령 제도를 마련한 취지도 지속적이고 상습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정폭력으로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이 사건에서 실제 어느 정도의 가정폭력 위험이 있었는지, 배우자나 자녀가 느낀 위협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 판결문만으로 판단의 당부를 논하기는 적절하지 않고, 방어권의 절차적 보장도 중요한 문제이다. 다만, 발령요건으로 실제 범죄행위의 발생 및 특정을 지적한 법리 판단은 아쉽다. 가정폭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피해자보호명령이 필요하고, 실제 가정폭력범죄가 발생하면 그 피해를 사후적으로 회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태형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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