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연상호 감독 "대중성과 거리 먼 나, 늘 투쟁한다" [인터뷰]

머니투데이 김나라 기자 ize 기자 | 2024.04.14 10:30
/사진=넷플릭스


연상호 감독이 신작 '기생수: 더 그레이'로 독창적인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의 진수를 보여줬다.


연상호 감독은 지난 5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이하 '기생수')로 전 세계 190여 개국 안방극장을 찾아갔다.


2016년 글로벌 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부산행' 이후 2020년 드라마 '방법', 영화 '반도' 등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한 연상호 감독. 올해 시즌2 공개를 앞두고 있을 정도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2021)도 히트시키며 '연니버스' 확장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연상호 감독은 만화가이자 애니메이션까지 아우르는 연출자,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로서 쉴 틈 없이 달려갔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2022)를 만들고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2022)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선산'(2024)의 각본을 쓴 바 있다.


최근 이러한 다작 행보로 대중의 피로감이 쌓일 때쯤 '기생수'를 선보인 것인데. '기생수'는 '부산행'과 '지옥'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연상호 감독만의 색깔이 고스란히 묻어나며, 다시금 '연니버스'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누적 판매 2,500만 부 이상을 기록한 이와아키 히토시의 원작 만화 '기생수'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시청자들까지 단단히 홀렸다.


연상호 감독의 '기생수'는 인간을 숙주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려는 기생생물들이 등장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전담팀 '더 그레이'의 작전이 시작되고, 이 가운데 기생생물과 공생하게 된 인간 정수인(전소니)의 이야기를 그린다. 공개 이후 단 3일 만에 6,300,000 시청 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에 등극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톱10 1위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프랑스, 독일, 일본, 인도, 뉴질랜드를 포함한 총 68개 국가에서 톱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인 인기를 입증했다.


연상호 감독은 최근 아이즈(IZE)와의 인터뷰에서 "'기생수'는 덕업일치(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음)"라고 표현, 창작자로서 순수함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놀라운 '연니버스' 성장의 원동력을 엿보게 했다.


다음은 연상호 감독과 일문일답.


Q. 원작 만화가 일본 현지를 넘어 국내에서도 두터운 마니아 팬층을 자랑한다. 부담감이 큰 작업을 소화했는데 어떤 마음으로 재구성하였나.


"'기생수'는 애초에 '상업적으로 잘 되겠지' 이런 접근이 아니라, 아주 순수하게 좋아하는 대상의 '팬픽'을 쓰듯이 작업하고 완성했다. '덕업일치'를 이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걱정도 전혀 안 했다. 정말 순수한 팬심으로 만들어서 어려움보다 재미가 컸다. 설정 자체도 새롭게 해보자는 건 없었다. 원작 만화의 사소한 부분들에서 최대한 끌어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려 했다. 예를 들어 날개 달린 기생생물은 원작 속 개 캐릭터에서 영감을 얻은 거다. 이런 이런 방식으로 만들고 싶다고 일본에서 첫 미팅을 했을 때 원작 출판사인 고단샤도 재밌어 하셨다. 실제로 원작의 스핀오프 버전이 꽤 다양하게 많이 나오기도 했었고, 굉장히 열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진정한 '성덕'(성공한 덕후)이 되었다. 글로벌 1위를 찍은 소감은.


"원작이 워낙 일본에선 대중적인 작품이라 당연히 한국판에도 반응이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기생수'를 좋아해 주시는 분이 많아서 다행이라고 느끼고 있다."




Q. 원작 만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했지만 세계관만 가져오고 캐릭터부터 스토리 등 모든 걸 완전히 새롭게 쌓아 올렸다. 차별점을 짚어준다면.


"원작은 주인공이 기생생물과 직접적으로 대화하면서 우정을 쌓아가는 방식이다. 반면 '기생수'는 인간 정수인과 기생생물 하이디, 다른 존재가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게 클라이맥스가 되어야 했는데 극적으로 하려면 둘이 만날 수가 없어야 했다. 그러면서 원래 자기가 잘 알던 사람(정수인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근원적인 공포를 다루려 했다. 근데 원작은 모든 공포를 기생생물의 얼굴이 열린다는 시각적 표현으로만 전한다. 또 한국판 '기생수'에서 제일 핵심은 인간이 공존하는 형태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조직이라는 거다. 여러 조직의 형태를 보여주는 게 목표였다. 모든 캐릭터가 조직에 속해 있는데, 체구가 작은 준경은 경찰 조직에서 높은 위치다. 인간이 무서운 게 전투력이 아닌 '조직' 때문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이 반대편을 떠올려 나온 인물이 수인이다. 가족에서도 떨어져 있지 않나. 근데 그런 수인과 하이디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 의지해 살아간다. 기생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의지'의 결과는 '공존'이라는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걸 말해준다."


Q. 왜 조직에 집중했을까.


"그건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가장 혼란스러운 지점이니까. 예전엔 명확했던 시대가 있었다. 냉전시대라 하면 거대 이데올로기가 있는데, 지금 우리는 뒤엉켜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 어디에 의지해야 할지 애매모호한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본다. 무엇을 믿을지 모르는 사회인 거다. 그래서 더욱 인간과 조직에 관한 주제에 집착하게 된다."


Q.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휴머니즘'에 대한 메시지도 빼놓지 않고 다뤘다.



"제가 어릴 때 재밌게 본 영화나 만화가 대부분 휴머니즘에 관련된 작품이었다. '기생수' 원작 만화도 그렇고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도 휴머니즘의 끝판왕이었다. 그런 작품들을 보고 자랐기에 휴머니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아무래도 요즘엔 아이가 크고 있고, 이제 제 작품을 인지할 수 있는 나이(10살)이다 보니 더 그렇다. '우리 아기가 봤을 때 어떤 걸 가져가면 좋을까' 하는 고민이 많이 든다."


Q. 배우 전소니가 인간 정수인, 기생생물 하이디를 오가며 '하드캐리' 활약을 펼쳤다. '전소니의 재발견'을 이끌었는데. 신선한 캐스팅의 비하인드를 들려달라.


"전소니라는 배우를 인식한 건 꽤 오래 전이었다. 독립영화 출연작들을 보고 언젠가 함께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기생수'가 마침 제가 원한 그림체와 딱 맞다고 느껴져서 캐스팅했다. 막상 일을 해보니, 수인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외로움이 전소니의 얼굴에서 잘 묻어나 더 좋았다. '나 외로워' 하고 인위적으로 표현하려 했다면 설득력이 없었을 텐데, 전소니가 감정을 세밀하게 세공해서 정말 잘 보여준 거 같다. 그리고 처음 미팅했을 때보다도 더 마른 얼굴이라서, 수인의 느낌을 받았다. 후반부에서 연기하기 힘들었을 텐데, 하이디가 많이 보이더라. 전소니가 진짜 세밀하게 표현해 줬다."




Q. 반면 이정현이 연기한 준경 캐릭터는 호불호가 나뉘었다.


"준경은 독특한 캐릭터다. 자기가 사랑하는 남편이 기생생물에게 희생당했다. 근데 원한을 가진 그 얼굴은 남편이고 여전히 살아있다. 사랑하는 존재의 육체를 '사냥개'로 취급하며 고문하는 복잡한 인물이다. 이런 내면의 고통을 감추기 위해 '가짜 광기'를 쓸 수밖에 없던 거다. '기생수'엔 수인과 하이디의 공존 과정도 있지만 준경이 가면을 벗는 과정도 있다. 그리고 준경뿐만 아니라, 제 작품에선 호불호가 나뉘는 캐릭터는 늘 있었다. '지옥'에선 화살촉 역할이 그랬듯이, 호불호는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Q. 단순하게 직설적인 대사로 메시지를 전달하며 시청자들 사이 지적이 나오기도 했는데.


"작품을 만들 때 생각해 볼 만한 주제를 다루는 건 정말 좋은데, 그렇다고 그걸 꼭 어렵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금까지 제가 만든 작품들이 대중에게 가는 것이었는데 그 대중의 범위가 꽤 넓지 않나. 특히 글로벌 플랫폼에 서비스되는 작품은 제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문화권의 대중에게까지 닿아야 해서 묘사가 더욱 명확해야 한다는 매체 특성이 있다. 앞으로 다른 작품에선 방식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기생수'는 명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만들긴 했다."




Q. '기생수' 말미, 원작의 주인공 캐릭터 이즈미 신이치를 등장시켜 열린 결말로 꾸몄다. 시즌2를 염두에 둔 것이냐.


"이즈미 신이치의 등장은 극 중에서 8년 정도 지난 후의 장면이다. 그 8년의 시간을 고려해 일본 배우 스다 마사키를 캐스팅한 것이고. 저도 '기생수'가 더 확장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넷플릭스에서 시즌2가 정식적으로 결정이 되는 게 꽤 복잡하다. '기생수2'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가 있긴 하나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기생수'는 꼭 제 손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나올 이야기가 정말 많다. 제가 만든 '기생수'를 계기로 미국판도 나오고 했으면 좋겠다. 그럼 저도 원작의 팬으로서 재밌게 볼 거 같다. '건담' '마크로스' '스타워즈'처럼 방대해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Q. '기생수'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이냐.


"올해 '지옥2'가 공개되는데 CG 작업이 거의 다 끝났다. 현재는 영화 '계시록' 촬영 중이다. 배우들이 정말 열심히 해서, 재밌게 잘 찍고 있다. 5월엔 또 다른 새 프로젝트에 들어갈 거 같다."


Q.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대단한 '열일' 행보를 걷고 있다. 본업에 육아까지, 그 원동력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


"직장인 마인드랑 비슷하다. 일과 마치면 육아하고(웃음). 프로듀서분들이 일정을 잘 나눠주셔서 다작이 가능했다. 근데 사실 요즘엔 대본을 쓰는 게 힘이 든다. '고독하다'라는 느낌을 최근에 받았다. 꿈은 큰데 능력은 안 되고 머리가 안 따라주고, 거기에서 괴리를 느낀다. 하지만 예전에 강제 휴식을 가진 적이 있어서 '하기 싫을 때 해야 나온다, 하고 싶을 때는 오지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그리고 '혁신적인 작품을 쓰겠다'라는 마음으로 쓰려 한다. 얼마 전에 제 작품을 한 번 쭉 봐봤는데, 제가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사람이 대중적인 걸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그 과정이 늘 투쟁의 형태일 수밖에 없다."


Q. '연니버스'에 대한 높아진 기대감이 부담이 되진 않는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부담이라는 자체가 배부른 소리이기 때문에, 그거에 대해 불평불만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일을 계속한다면 대중의 기대감을 채우는 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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