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암' 한국도 곧 사망률 1위…"그 많은 환자 누가 고칠까" 교수의 한숨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 2024.04.10 14:00

췌장·담도 질환 내시경 치료, 술기 어려운데 합병증 높아
내시경 시술 1%에 불과한데도 의료분쟁 4건 중 1건 달해
"유죄 선고받고 떠나는 의사들 많아… 필수의료로 지정돼야"

췌장암을 떼내는 내시경 치료에 사용되는 의료기기. /사진=정심교 기자
췌장암·담도암 환자가 급증하면서 5~10년 내로 췌장암이 우리 국민의 사망 원인 암 1위로 올라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들 암 덩어리를 떼는 내시경 시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올해 고작 3~4명 신규 배출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췌장담도학회 소속 교수들은 "시술이 워낙 어려운 데다 시술 후유증이 커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까지 크다"며 "그런데도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 패키지에 빠져 있어 젊은 의사들이 기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한췌장담도학회에 따르면 올해 유럽과 미국의 사망률 1위 질환은 췌장암으로 집계됐다. 유럽췌장학회(EPC)에 따르면 오는 2040년경 췌장암은 다른 암과 두 배 이상 격차를 벌리며 완벽하게 1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이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전 대한췌장담도학회 이사장)은 "우리나라도 5~10년 내 췌장암·담도암이 모든 사망원인 1위 암을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과거 한국인은 못 먹고 버티는 건 잘 해왔는데, 잘 먹었을 때의 대비가 잘 안 돼 있다"며 "이에 따라 담석 기반 질환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외과 수술 가운데 맹장 수술을 제치고 담낭 절제 수술이 최다 수술로 올라선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고령화하면서 급증한 대사성 질환(비만·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 등도 담낭암·담도암·췌장암 발생률을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진 교수는 "똑같은 암 환자여도 내시경 치료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생존 기간이 2배, 3배, 4배로 늘어난다"며 "담즙 배액을 어떻게 잘 빼주고 돌리느냐에 따라 예후가 크게 차이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암·폐암의 경우 과거보다 치료 예후가 많이 좋아진 암으로 꼽힌다. 표적치료제·면역치료제 등 항암제가 발달하면서다. 하지만 췌장암은 난치 암으로 꼽히는데, 췌장암이 생기는 원리가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라는 것. 이진 교수는 "췌장암의 원인이 뭉치고 뭉쳐 있어서, 어느 한 가지를 잘라내도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며 "고령화로 아무리 진단이 빨라졌다 해도 85세, 90세 수술 만만치 않다"고 토로했다.

이 학회에 따르면 불과 4~5년 전만 해도 '수술하기 애매하지만, 그냥 둘 수도 없는' 췌장암을 수술하고 나면 예후가 불량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사전 항암 요법을 시행하면 과거엔 수술할 수 없던 환자의 60~70%가 수술 단계로 진입하고, 생존 기간도 과거 9~10개월에서 지금은 2~3년으로 느는 추세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면역치료를 병행하면 지금보다 예후가 훨씬 좋아진다는 게 이진 교수의 설명이다.

문제는 소화기내과에서 담당하는 췌장암·담도암에 대한 내시경 시술을 의사들이 꺼린다는 것. 이진 교수는 "췌장·담도 분야는 내과, 특히 소화기내과에서도 '3D'로 꼽힌다"며 "그만큼 어려운 시술이어서 의사들이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의사가 췌장·담도 질환 공부하고 이 분야 치료에 헌신해주면 좋겠는데 췌장·담도 질환 전담 교수가 올해 많아야 4~5명 배출될 것 같다. 그 많은 환자 누가 고칠까? 굉장히 안타깝고 걱정스럽다"고 했다.

내시경으로 췌장암·담도암을 떼는 시술법은 고난도의 술기가 뒤받쳐줘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합병증이 많은 시술로 꼽힌다. 시술 부위에서 출혈이 잘 나타나는 데다, 췌장염이 생기기 쉽다. 시술 후 담도가 막히면 적어도 2~3일 내에는 해결해야 하고, 안되면 사망률이 높다. 이에 이진 교수는 "나를 포함, 의사들이 한 달에 3~4번은 발 뻗고 자지 못할 것"이라며 "시술이 잘됐는지, 밤에 피가 나지는 않는지, 시술 부위가 터지지는 않는지 늘 불안에 떨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췌장암 이미지.

의료사고에 대한 대비도 시원찮다는 게 학회의 주장이다. 이진 교수는 "시술 후 문제가 생기면 '블레임'을 많이 받는다"며 "그렇다면 그런 위험한 일을 했을 때 수가가 적절하게 보전돼야 하는데, 공부와 헌신에 비해 돌아오는 부담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부담이 큰 이유 중 하나는 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내놓은 정책 중 '소화기내과의 내시경 시술'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게 학회의 주장이다. 이준규 동국대 일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정부가 심뇌혈관 질환과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질환 등을 필수의료 범위에 담고 있다"며 "내과 8개 분과 가운데 심장내과는 필수의료에 포함되지만,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관리하는 호흡기내과는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응급으로 담도염을 내시경 시술하거나, 위장관 출혈에 대해 지혈술을 하는 내시경 분야는 정부의 필수의료 영역에서 아예 빠져 있다. 내과가 모든 질환 중 환자가 가장 많은데도 필수의료에서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소아과와 흉부외과 살려야 한다고들 이야기하지만, 현실적으로 환자 수, 치료 중요도를 따지면 내과도 못지않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준규 교수는 "췌장·담도 질환을 보는 소화기내과 교수 5~10명이 곧 은퇴하는데 신규 교수가 될 3년 차 전공의가 3~4명밖에 안 들어왔다"며 "그들이 대학병원에 남아 췌장·담도 질환을 계속한다는 보장도 없고, 2차 병원이나 개원가로 빠지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어 인력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전 대한췌장담도학회 이사장)은 지난 5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열린 대한췌장담도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우리나라도 5~10년 내 췌장암·담도암이 모든 사망원인 1위 암을 차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사진=정심교 기자
내시경을 이용해 췌장·담도 질환을 치료하는 ERCP(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는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전체 내시경 시술 중 약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료분재중재원에 따르면 전체 내시경 관련 의료 분쟁의 약 4분의 1이 ERCP다. 일반 내시경 시술에선 합병증 발생률이 1% 이하에 불과하지만, ERCP의 경우 10%에서 췌장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하고 있다.

이준규 교수는 "한번 발생하면 사망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아, 의사들이 큰 부담을 갖고 시술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 유죄를 선고받고 이 분야 치료를 떠나는 의사가 적잖다"고 덧붙였다.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만큼 법적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필수의료총괄과 이민정 보건사무관은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필수의료의 범위를 특정 과에 한정하지 않고 있다. 우선순위에 따라 지원하려 한다"며 "의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복지부 급여과와 상의해 지원이 필요한 필수의료의 범위를 점차 넓혀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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