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이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의 '저지선'이 될 것이란 기대가 무너지고 있다.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전국전공의협의회(전대협) 비상대책위원장의 '140분 독대'마저 성과 없이 종료되며 과로에 지친 의사, 경영난에 직면한 병원, 기약 없이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가 모두 '패닉'에 빠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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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교수들 이번 주부터 '주 52시간 진료' 본격 시행━
이미 충북 지역 유일한 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은 비대위의 결정에 따라 4월부터 금요일 외래 진료를 축소했다. 시행 첫날인 지난 5일 외래 진료는 평상시보다 75% 줄었다. 계명대 동산병원도 둘째 주부터 토요 진료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전의비는 진료 축소에도 항암 등 중증질환과 응급·중환자 진료는 최대한 수행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전공의가 떠난 지 7주가 지나면서 병원에 남은 의사들은 정신적·체력적인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수도권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전공의 업무까지 도맡다 보니 하루 한 끼 먹기도 버겁다"며 "이틀에 한 번꼴로 밤샘 당직을 서며 36시간씩 일한다"고 토로했다. 전의비가 최근 7개 소속 의대 교수 1654명을 설문 조사했더니 밤새 당직을 서고 다음 날 정상 근무하는 비율은 81.6~98.8%로 거의 모두 해당했다. 주당 72시간 근무하는 비율이 절반(40.4~59%)에 달했고 100시간 넘게 일한다는 응답도 6.4~16%나 됐다.
고범석 전의비 공보 담당 교수(서울아산병원)는 "의료사고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교수들이 진료 단축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이전에 예약한 환자 진료가 거의 끝나가는 만큼 이달부터 주 52시간 진료에 참여하는 병원과 의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의비와 별도의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도 같은 이유로 지난달 말 각 수련병원에 공문을 보내고 주 52시간 진료를 추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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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수입 4000억 넘게 '뚝' 큰 병원일수록 심각해━
대한병원협회(병협)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집단 이탈한 지난 2월 16일부터 지난달까지 500병상 이상 수련병원 50곳의 의료 수입은 2조2406억6349만원으로 전년 대비 4238억3487만원(15.9%) 줄었다. 병원당 평균 84억7669만원이나 감소했다. 특히, 1000병상 이상 병원은 평균 224억7500만원으로 큰 병원일수록 손실 규모가 더 컸다. 국내에서 환자가 가장 많이 찾는 서울아산병원은 이 기간 의료분야 순손실이 511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 등 '빅5 병원'을 포함한 상당수 병원은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병동을 통합, 폐쇄하고 간호사에 이어 행정직까지 무급휴가를 쓰며 비용 절감에 나서는 실정이다.
하지만, 출구 없는 의정(醫政) 대치에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까지 병원을 떠나면 그야말로 '줄도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반강제로 비용 효율화에 내몰린 구성원들의 동요·반발로 언제까지 비상 경영을 유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근 두 달 사이 비상진료체계 유지에 5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 정부도 급여 선지급 등 추가 재정 투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출구 없는 의정 대립에 환자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환자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지난 5일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합병증과 2차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며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하고 교수 사직이 잇따르며 환자와 가족들의 두려움과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같은 날 "중증·응급의료 체계가 붕괴해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의 생명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지금은 그야말로 의료 대재앙 상황"이라며 "정부와 의사단체는 치킨게임을 중단하고 진료 정상화를 최우선 목표로 조속히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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