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밑바닥이 드러나야 보이는 것들

머니투데이 김명룡 바이오부장 | 2024.04.04 05:30
잔잔한 호수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때는 극단적인 가뭄이 들때다. 호수의 물이 메마르면 밑바닥에 숨겨졌던 불편한 진실이 고개를 내민다.

겉으로 평온해 보였던 의료생태계란 호수의 물이 빠져버린 건 정부가 의대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나서면서부터다. 전공의들은 지난 2월19일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환자 곁을 떠났다. 1만3000명의 전공의 중 이탈한 이가 1만명이 넘는다.

사직서를 제출하는 전공의들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실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방 국립대병원 한 교수는 "우연히 많은 전공의가 사직을 했지만 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한 것"이라며 "남들이 누리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의사들도 누렸을 뿐인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항변했다. 그는 "평생 이과 1등을 하며 칭찬만 받고 살아온 이들이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된 것"이라며 "정부가 행정처분 등을 명목으로 압박만 가하다보니 반발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모든 직업엔 권한과 의무란 게 있다. 의사에겐 진료독점권이란 강력한 권한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반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도 있다. 전공의들은 자신들의 권한과 자유를 의무 앞에 두었다. 전공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비우고 50일째 환자 곁을 떠나 돌아오지 않고 있다. 예부터 의사란 직업에 '스승사(師)'를 써 높였다. 일반적으로 '의사 선생님'이라고도 칭한다. 이런 말엔 의무를 권한 앞에 둔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담겼을 것이라 생각된다.

의사들이 자유를 택하고 환자를 떠난 순간 더 이상 그들에게 과거와 같은 존경과 신뢰를 주긴 어려워 보인다. 의사가 아니라 '의료 기술자', '의료 자영업자'라고 불러야 한다는 비아냥까지도 들린다. 이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국민들이 의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의사들이 자신들이 목표하는 바를 이루더라도 잃게 될 가장 뼈아픈 가치가 될 것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역설적으로 이들이 얼마나 막강한 독점권을 가졌는지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이들을 대체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게 그 방증이다. 그래서 그들의 부재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돼 온 PA(진료보조) 간호사 제도화, 비대면진료 확대, 문신 시술 등 미용시장 개방 등을 가속화하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단 평가가 나온다.


먼저 의료현장에서 이미 암묵적으로 의사 업무를 일부 수행해온 PA간호사들이 전공의의 자리를 메워온 것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현행법상 '의료인'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만 해당한다. 의료인이 아닌 PA가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불법이다. 1만명이 넘는 PA가 존재하지만 이들은 '병원 유령'이라고도 불렸다. 불법의 경계를 오가던 PA들이 법적 테두리내로 들어올 가능성이 커진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가벼운 눈썹문신마저도 의사들에게만 허용되고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된 사람들이 많다. 지금도 문신은 거의 비의료인들이 하고 있지만 법적으론 의사들만 할 수 있다. 정부는 문신 시술을 비의료인에게 개방하기 위한 국가시험 개발을 시작했다. 이밖에 비대면진료도 확대되면서 많은 환자가 혜택을 보고 있다.

이른바 '빅5'로 불리는 수도권 대형병원에 환자가 몰리는 현상이 완화된 것은 전공의 집단사퇴로 나타난 의외의(?) 긍정적 효과라는 평가도 있다. 지금까지 상급종합병원은 경증환자들까지 몰려 북새통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그보다 규모가 작은 종합병원(2차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번 기회로 국민이 인식을 바꿔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줄어든다면 의료대란으로 비정상이 정상화되는 것이 될 수 있다.

의대정원 갈등은 언젠가 해소가 될 것이고, 의료계란 호수엔 다시 물이 차오를 것이다. 호수가 밑바닥을 드러냈을 때 문제점을 치워야 한다. 어쩌면 이번이 의료계의 여러 해묵은 문제를 해결할 좋은 기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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