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경기 고양시에 있는 한 동물병원. 노란색 스카프를 멘 차우차우 테디(4)가 견주 최아름씨와 함께 동물 병원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헌혈을 하기 위해서다. 테디는 익숙하다는 듯 자리에 앉더니 조용히 순서를 기다렸다.
의료진 5~6명이 다가와 각종 검사를 진행했다. 다리에 주사 바늘을 꽂고 30분 동안 채혈을 했지만 테디는 순하게 앉아있었다. 최씨는 그런 테디가 혹여나 불안하지 않도록 꼭 안았다.
이날 테디는 동물병원에 온 또 다른 개 '실버'의 목숨을 구했다. 실버는 빈혈 증세를 보여 긴급 헌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최씨는 "유기견이었던 테디가 헌혈견으로서 또 다른 생명을 도울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테디는 유기견 보호센터에 있다가 3년 전 최씨에게 입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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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혈 위해 길러지는 '공혈견'…"이제는 헌혈견이 함께 한다"━
최근 반려견이 증가하면서 개 수혈용 혈액에도 관심도가 높아졌다. 과거 공혈견이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며 혈액의 90% 이상을 공급했지만 이제는 자발적인 반려견 헌혈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헌혈견협회에 따르면 국내 등록된 헌혈견은 약 1000마리다. 그동안 동물 의료 병원은 한국동물혈액은행에서 공혈견 혈액을 구매해 공급했다. 공혈견은 오로지 수혈만을 위해 길러지는 개를 말한다. 국내에는 300~400마리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최씨는 공혈견을 구하기 위해 2년 전부터 테디와 헌혈을 시작했다. 그는 "공혈견이라는 게 필요 없어지면 공혈견이 사라지지 않겠느냐"며 "자발적인 봉사를 통해 강아지를 보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협회와 연계된 동물 병원은 전국에 20곳 정도다. 병원에 도착하면 진드기, 심장사상충 등 바이러스 질병이 없는지 피 검사를 한다. 빈혈 수치, 혈소판 개수 등 정밀 검사도 진행한다. 건강에 이상이 없을 때 헌혈을 진행할 수 있다.
헌혈견이 검사 도중 스트레스를 받거나 두려워하면 검사는 즉시 중단된다. 최씨는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인데 오히려 스트레스를 준다면 문제가 된다"며 "개가 극도로 흥분하거나 짖을 때는 그냥 멈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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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 이하, 몸무게 25㎏ 이상… 헌혈견 조건━
헌혈할 수 있는 개의 조건은 2살 이상 8살 이하, 몸무게 25㎏ 등이다. 혈액 관련 질병을 비롯해 수혈 받은 이력도 없어야 한다. 중성화 수술을 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 가능하다. 심장사상충 예방과 구충 등 정기적인 예방 접종도 해야 한다.
정기 헌혈은 3~6개월, 혹은 1년 주기로 가능하다. 보통 다리 혈관에서 300~350ml를 채혈하며 몸 상태에 따라 목의 경맥에 헌혈을 진행하기도 한다. 헌혈견이 한 번 헌혈을 하면 소형견 2~4마리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헌혈을 끝내면 분홍색 헌혈증 배지가 나온다. 후원사들에게 사료, 영양제 등도 후원 받을 수 있다. 헌혈에 참여하기 전 무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 지속적인 건강 관리도 가능하다. 헌혈견 문화는 긴급 헌혈이 필요한 개들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 협회에 가입이 되어 있으면 수혈 가능한 반려견을 바로 찾아내 도움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부성 한국헌혈견협회 대표는 "최종적으로는 전국 단위 반려동물헌혈지원센터를 짓는 게 목표"라며 "중앙에서 혈액을 저장해두면 수혈 필요 지역에 혈액을 내려주고 또 그 지역에서 작은 동네 병원에 혈액을 공급해주는 그런 관계를 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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