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암 발견, 수술 못하면 어쩌죠"…교수도 떠날까 '발동동'[르포]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박정렬 기자 | 2024.04.01 16:48
1일 오후 서울대병원 응급 CT·MRI 검사 보호자 대기실 앞에서 환자(왼쪽)와 보호자가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남편에게 5㎝ 크기 뇌종양이 발견됐는데, 수술 못 받을까 봐 애가 타들어 갑니다."

1일 서울대병원(서울 종로구) 본원 1층 응급 CT·MRI 검사실 앞에서 만난 80대 여성 A씨의 호소다. 이 여성의 남편인 80대 남성은 전공의 단체 사직(2월 19일) 직전, 이 병원에서 뇌종양 말기로 진단받았다. 3월 말까지 항암화학요법으로 암 크기를 줄인 후, 1일 MRI 검사 결과에 따라 오는 3일 신경외과에서 수술 여부를 듣기로 했지만, 불안감이 크다. A씨는 "남편이 연로한데, 하필 전공의들이 단체로 떠난 때 진단받으면서 억울하다"며 "다행히 검사는 미뤄지지 않았지만 수술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전공의가 없어 못 한다고 들을까 봐 벌써 억장이 무너진다"고 눈물을 흘렸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1일부터 외래 진료를 자발적으로 축소하기로 하면서 상급종합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대체로 표정이 어둡다. 외래 진료와 검사는 대체로 미뤄지지 않은 모습이지만, 외래 진료와 검사에서 "수술해야 한다"는 소견을 들을까 봐 걱정하는 분위기다.

1일 오후 서울대병원 1층 응급중환자실에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이날 오전 세브란스병원 정문에서 만난 김 모(68) 씨는 남편 강 모(73) 씨가 탄 휠체어를 잡은 채 "교수들이 떠나면 환자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울먹였다. 강 씨는 6개월 전 췌장암 2기 진단받았다. 10회에 걸친 항암 치료 후 황달이 심해져 추가 치료를 중단한 상태다. 담즙을 빼내기 위해 배액관을 찬 채 생활하는데 최근 고열과 혈압 저하, 통증으로 응급실을 찾아야 했을 만큼 상태가 불안정하다고 했다.

김 씨는 "남편의 체중이 반년 새 10kg이나 빠졌다. 열이 나거나 아프다고 하면 덜컥 겁부터 난다"며 "다행히 오늘 외래 진료 후 입원이 결정됐는데, 앞으로 교수마저 병원을 떠나면 남편이 아플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너무 불안하다"라며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1일 오전 세브란스병원 1층 로비의 환자 등록·입원 접수 창구가 한산한 모습이다./사진=박정렬 기자
이날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의대 교수들의 단축 근무 선언에도 다행히 외래 진료는 큰 차질이 빚어지진 않았다. 뇌·심장 등 필수 의료 분야는 첫 방문(초진) 환자의 진료도 이뤄지고 있다고 병원은 전했다. 이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은 현재 의사가 부족해 재진 환자만 받기도 한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단축 진료와 사직서 제출을 진행해 전체적인 현황을 파악하긴 어렵다"면서도 "오전에 확인한 결과 외래 진료는 전과 마찬가지로 10~20% 축소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빅5의 외래 진료 축소 현황은 어땠을까. 각 병원 관계자에게 문의한 결과, 서울대병원은 "일부 조정이 있을 수 있고, 1일부터 추가로 더 조정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지난주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은 "외래 축소, 단축근무 시행 관련 병원 측 공지는 아직 없지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세브란스병원은 "외래 진료 축소는 없다"고 말했고, 서울아산병원은 "기존하고 비슷한 정도 수준"이라며 "외래 진료의 경우 평소(의료대란 전) 대비 약 20% 감소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삼성서울병원도 "지난주와 변동 없다"고 귀띔했다.


서울대병원 1층 천장에 설치된 레일을 통해 환자의 검사 영상 결과물(31번 상자)이 응급영상센터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다만, 교수들의 진료 축소 선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는 게 주요 병원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교수가 진료를 거부할 경우 다른 교수에게 일이 몰려 결국 연쇄적으로 진료 축소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의대 교수들의 근태관리가 고민거리다.

서울지역 한 수련병원 관계자는 "교수들이 주 52시간, 주 40시간 근무를 이야기하지만 외래·당직·연구·수술 등 실제 업무량을 알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도 "진료 계획을 병원에서 지정하거나 요청하는 것 모두 의사의 반발을 살 사안"이라며 "강제로 의사의 진료량을 유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토로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의대 교수들이 의료현장을 떠나는 이번 주부터는 더 많은 환자의 희생과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될 것"이라며 "중증 환자를 방치하는 정부나 의사가 당장 진정성 있는 대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국민과 환자들에게 설 자리도, 명분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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