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MB)은 지난달 31일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조 명예회장은 지난달 2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조 명예회장은 생전 '기술 경영'을 앞세워 스판덱스·타이어코드 등 효성그룹의 글로벌 1위 제품을 만든 인물로 유명하다. 그런데 MB는 고인이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도 한 몫을 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은 MB 본인이 항상 가장 자랑스럽게 언급하는 치적인데, 여기에 조 명예회장의 지분 역시 있다고 언급한 셈이다.
조 명예회장은 실제 서브프라임 위기가 세계를 휩쓸던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MB의 대통령 임기(2008~2013년)와 실제로 겹친다.
당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를 표방했던 MB는 전경련을 정책의 파트너로 여겼다. 조 명예회장은 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MB의 글로벌 순방 및 각종 회의에 함께 하며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목소리를 강하게 냈다. 한·미재계회의 등을 통해 쌓은 미국 측 재계인사들과의 폭넓은 교분 역시 당시 위급한 상황에 큰 힘이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4월 청와대 '민관 합동회의'에 참석했던 조 명예회장은 중국으로 향하면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등에 우리가 끌려다닐 수만은 없다"며 동아시아 경제권 형성을 통한 위기 극복을 강조했다. 능동적 태도로 우리 스스로 이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맥락에서 '샌드위치 코리아'의 비전으로 '고부가 전략'을 일찍부터 설파했다. 최근 중국 저가제품의 과잉공급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 등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조 명예회장은 "대량생산은 중국이 낫지만 손님이 뭘 원하는지 빨리 알아내 조정하는 능력은 우리가 낫다"고 밝혔다. 또 "우리가 중국과 코스트 경쟁을 할 수는 없기에, 기술과 노하우를 차별화해 비싸게 받을 물건을 만들면 된다"며 "노사가 화합해 만들면 이길 수 있다"고 했다.
한미 FTA 등 개방 정책에도 힘을 줬다. 그는 "더많은 나라와 FTA를 체결하여 국내시장을 개방하고 기업의 대외진출을 촉진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구조와 체질을 튼튼히 해야 한다"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고 투자를 저해하는 각종 규제는 과감히 철폐되거나 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조 명예회장은 재계의 넓은 인맥과 특유의 리더십으로 정부에 다양한 정책 제안을 했다"며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 발전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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