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인플레이션의 책임

머니투데이 이재윤 기자 | 2024.04.01 05:00
서울 한 대형마트 라면코너의 모습./사진=뉴시스
"정부에서 요구하는데 어쩔 수 없죠. 하지만 폭리를 취한 건 절대 아닙니다."(대형 식품기업 임원)

요새 식품업계의 화두는 단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다. 인플레이션으로 비용 부담이 커진 가운데,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인건비와 물류, 원자재를 비롯해 전기·가스 요금까지 안오른게 없다. 한 마디로 라면 하나를 만드는 데 더 많은 돈이 들지만 예전만큼 팔리진 않는단 얘기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장바구니 물가를 의식한 정부가 식품 업계에 인플레이션의 책임을 나눠지도록 하면서 '단가 인하' 압박까지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가오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정부의 요구는 더 거세졌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식품업계로 쏠렸고, 인플레이션 효과를 누려 폭리를 취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주요 식품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번짓수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내수가 아닌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려 호실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농심의 신라면과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 등이 그런 사례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라면 수출액은 9억5200만달러(약 1조3000억원)로 전년 대비 24% 뛰었다.


식품 기업들이 폭리를 취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매출이 늘어났지만 영업이익률 변화는 크지 않다. 대표 기업인 CJ제일제당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4.5%, 농심은 6.2% 정도다. 대다수가 평년과 비슷한 4~6%에 머문다. 국내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 5%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수준이다. 코스피 식품 상장사 중 영업이익률이 가장 높은 오리온(16.9%)의 경우 전년대비 0.7%포인트 상승했는데 경영혁신 효과가 가장 크다.

인플레이션의 책임을 식품업계에 떠 넘기는 건 단기적인 해결책에 지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식품업계도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장기적으론 기업 경쟁력 약화와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푸드(한국식 음식)'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 지 모를 일이다. 글로벌 호황기를 맞은 국내 식품기업에게 가격 인하를 압박하기보다 재투자를 유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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