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신혼여행' 대신 '기술연수'…한미 FTA도 앞장선 'MR. 조'

머니투데이 이세연 기자, 최경민 기자 | 2024.03.30 07:00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사진제공=효성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지난 2017년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7년 만이다. 조 명예회장은 효성그룹 2대 회장으로 1982년부터 2017년까지 35년간 그룹을 이끌었다.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직전까지 '기술 중심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등 효성의 핵심 제품들을 개발해냈다. 조 명예회장의 어록을 통해 그의 확고한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세계 최고의 기술과 최고의 품질"


조 명예회장은 효성그룹 재임 당시 기술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1998년 12월 신입사원 연수 특강에서 "매사는 완벽한 기초조사와 연구 그리고 검토를 거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장래를 염두에 둔 입장에서 판단되고 경정돼야 한다"면서 "그러나 일단 결정된 일은 이를 완벽하게 이룰 때까지 과감하게 추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효성의 업무추진 방식이다"라고 했다.

2001년 12월 올해의 효성인상 시상식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과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도록 철저하게 관리해 나가며, 연구 부문에서는 독자기술을 개발하여 경쟁력의 바탕으로 삼고, 영업 일선에서는 가장 먼저 고객에게 달려가 그들의 소리를 듣고 고객 니즈를 만족시켜갈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도전'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도 밝혔다. 조 명예회장은 2000년 11월 사내행사를 통해 "도전이란 늘 하던 것을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수고 새롭게 만드는 것이란 자세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스스로를 훈련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했다.

조 명예회장은 기술 축적이 없던 상태에서 스판덱스의 독자 개발을 결정했다. 그결과 효성은 당시 미국, 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만 보유하고 있던 스판덱스 제조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스판덱스는 타이어코드와 함께 오늘날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효성그룹의 대표 제품으로 자리잡았다.
2007년 3월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전경련 회장 취임식 모습/사진제공=효성그룹

여성일자리 창출과 일·가정 양성 확립도 강조했다. 조 명예회장은 2001년 신입사원 특강에서 "여성들이 결혼해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그동안 열심히 교육받아 습득한 기술을 가지고 그냥 나가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손해"라며 "우리 경제를 크게 만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여성취업인구를 늘려서 그들이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여성이 취업하기 쉽게끔 사회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기업 정서를 바꾸기 위해서는 기업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했다. 조 명예회장은 "우리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기업정서를 해소하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신뢰받는 기업사를 정립해야 한다"고 밝히는가 하면,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 스스로 윤리경영 및 투명경영에 적극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미FTA부터 정책제안까지…'민간 외교관'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사진제공=효성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은 그룹경영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도맡았다. 풍부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경제 외교관'의 역할을 했고, 대중소기업 상생에 이바지하는 재계의 구심점으로 역할한 경제계 원로로도 평가받는다.

조 명예회장은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교역상대국 경제인들과 활발한 협력 활동을 전개했다. 유창한 어학 실력과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이 됐다.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미재계회의, 한일경제협회,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한중재계회의 등 30년 이상 다양한 국제경제교류단체를 맡아 많은 성과를 올렸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있어 그의 공은 컸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2000년부터 한미재계회의를 통해 최초로 한미 FTA의 필요성을 공식 제기했고, 체결 이후에도 미국 의회를 방문해 인준을 설득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2008년에는 한미비자면제 프로그램 시행을 주도하여 양국 간 교류 활성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005년 4월 한일경제인회의에서 한국 재계 대표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효성

그는 2008년 FTA 민간대책위 공동위원장 조찬간담회에서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인 수출의 지속적 신장과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한미FTA의 조기발효를 통해 미국시장을 선점함과 동시에 경제의 개방과 제도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일본과도 한일FTA의 필요성을 제기해 추진한 바 있고 한일경제인회의, 한일산업기술협력페어, 한일고교학생캠프 등을 통해 한일간 무역역조 해소와 한일 기업간 공동비즈니스 추진, 한일 국민간 우호친선활동 등 다양한 교류활동을 벌여왔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을 맡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과 일자리 창출, 경제계 국제교류 활성화 등에 이바지했다.

그가 수장을 맡을 당시 전경련은 그 역할이 퇴색돼 가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조석래 명예회장은 재계의 넓은 인맥과 특유의 리더십으로 전경련을 '일하는 조직', '솔선수범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정부에 다양한 정책을 제안해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발전하는 데 역할했다.


이탈리아 신혼여행 간 이유가 '기술연수'…집념의 '미스터 조'



1988년 8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경제협력을 논의하고 있는 조석래(왼쪽 첫번째) 효성그룹 명예회장 /사진제공=효성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에 가장 많이 따라붙는 단어는 '기술'이다. 공학도 출신 CEO로 '기술 중심주의'을 내세우며 글로벌 기업 효성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얼마나 기술을 중시했는지는 결혼을 둘러싼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 명예회장은 부인 송광자 여사와 결혼식 후 신혼여행을 이탈리아 포를리라는 곳으로 갔다고 한다.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지를 선정한 것은 아름다운 풍광 때문이 아니었다.

이 지역은 효성그룹의 전신인 동양나이론의 기술자들이 나일론 생산기술을 익히기 위해 연수를 받고 있던 곳이었다. 효성그룹 관계자는 "직원들과 함께 직접 기술연수를 신혼여행을 이 지역으로 갈 정도로 기술에 대한 열정을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 당시 폴리프로필렌 사업에 도전할 당시에도 이같은 면모를 보였다. 회사 내부에서는 원료 확보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안 하는게 좋겠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조 명예회장은 '안되는 이유 백 가지' 보다 '되는 이유 한 가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조 명예회장은 수소문 끝에 미국의 한 회사에서 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해 프로필렌을 만드는 탈수소공법을 적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직 개발중인 신공법인데다 이를 상업화할 기술이 없었으나 조 명예회장은 용단을 내렸고, 결과적으로 탈수소공법을 적용한 폴리프로필렌 사업은 큰 성공을 거뒀다.
1999년 스판덱스 공장 준공식에서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
소탈한 면모도 있었다. 정철 전 효성물산 전무가 홍콩 주재원으로 있을 당시, 경비실에서 '미스터 조'라는 분이 찾아왔다는 연락이 왔었다. 정 전 전무가 내려가 보니 조 명예회장이 가방을 들고 혼자 서 있었다.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소탈한 분이구나"라고 느꼈었다는 게 정 전 전무의 회고다. 일본 출장을 갈 땐 자동차 보다 전철을 선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실무진과 토론도 많이 했고, 임원들도 생각이 다르면 조 명예회장에서 그건 틀린 것 같다며 건의하기도 한 것으로 유명하다"며 "해외 출장을 갈 때도 수행원 없이 늘 혼자 다닐 정도로 허례허식을 싫어했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의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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