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치매 엄마, 요양시설 대기번호 5000번

머니투데이 배규민 기자 | 2024.03.26 05:55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어머님이 치매에 걸리셨는데 서울에 마땅한 시설이 없네요." "어머님이 뇌졸중을 겪은 후 거동이 불편합니다. 경기도 한 요양 시설에 모셨는데 거리도 멀고 가격에 비해 시설도 낙후되었지만, 대안이 없어요."

최근 지인들을 만나 들은 하소연이다. 도심권의 노인요양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지인들의 이야기는 더 심각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지난해 기준 요양 1·2등급자 수가 2만4000명인데 관련 요양시설의 정원은 1만6000명에 불과했다.

노인요양시설은 그동안 영세법인이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몇 년 전부터 대기업이 관심을 보이지만 공급은 속도를 내지 못한다. KB금융지주의 자회사인 KB라이프생명은 자회사인 KB골든라이프케어를 통해 노인요양시설을 운영 중이다. 위례빌리지와 서초빌리지의 수용 인원은 각각 80명, 120명 총 200명이다. 하지만 현재 대기 인원은 약 5000명에 달한다. 내년에 강동(140명), 은평(140명), 광교(180명)빌리지가 문을 열면 460명을 추가로 수용할 수 있지만 나머지 4500여명은 또다시 기다려야 한다.

수요가 몰리는 이유는 2가지다. 서울 또는 가까운 경기도에 위치하고 누구나 알만한 기업에서 운영하기 때문이다. 노인요양시설은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 등으로 심신에 상당한 장애가 발생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이 입소한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보호자 입장에서는 가깝고 시스템과 질적인 서비스가 보장된 곳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행법상 노인요양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땅을 직접 매입해야 한다.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자본력이 되는 대기업도 요양시설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도 규제 완화 필요성에 공감해 지난해 7월 관련 공청회를 열었지만 '골목 상권 침해'와 '특혜 프레임'에 막혀 진전도 없이 9개월을 그대로 보냈다.

반대 이유는 땅을 매입하지 않으면 사업자가 갑작스럽게 운영을 중단하는 등 입소자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우려다. 또 대기업이 진입하면 요양사업 운영업체가 피해를 볼 수 있고, 특히 생명보험회사가 요양사업에 관심이 있는데 이들을 위한 특혜 정책이라는 시선이 강했다. 때문에 생명보험업계는 별도 용역을 통해 토지를 매입하지 않더라도 사업자를 관리할 수 있는 방안 등을 정부에 제출했지만, 특혜 프레임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

초고령화와 베이비부머의 노인세대 진입 등 인구구조가 급격히 바뀌고 있다. 관련 헬스케어, 요양, 실버주택 등 관련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정부가 모든 인프라를 제공할 수 없다면 민간이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안전 장치 마련 등 발빠른 움직임이 필요하다. 시장이 커지는데 골목 상권 논리만으로 계속 문을 닫아둘 수만은 없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관련 시장을 활성화하고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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