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소아청소년과가 '동냥 진료'를 해야 합니까."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필수 의료를 살리겠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 개혁'을 바라보는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의정부 튼튼 어린이병원장)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지난 22일 의정부튼튼어린이병원에서 만난 최 회장은 "소아청소년과가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수없이 요청했지만 엉뚱한 곳에 힘을 쏟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소아청소년과를 필수 의료가 아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진료과로 여기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소아청소년과는 저출산, 지역소멸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출산율은 브레이크 없이 추락하고, 아이가 없는 곳이 늘어나면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수·지역의료 육성을 외치며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증원 등 필수 의료 패키지는 여전히 '미봉책'에 그친다는 게 최 회장의 판단이다.
특히, 최근 보건복지부가 인턴의 소아청소년과 최소 의무 수련 기간을 현재 2주에서 4주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연차별 수련 교과과정 개정안'을 발표한 것을 두고 최 회장은 "소아청소년과의 붕괴를 기정사실로 한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젊은 의사가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간판만 형식적으로 유지하려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소아 의료 공백을 메꾸겠다며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 업무 범위를 일반 성인에서 소아까지 한시적으로 확대한 것 또한 "죽어가는 소아청소년과를 합법적으로 '동냥 진료' 시키는 처사"라고 봤다. 의료계에서 "아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고 말하는 건 성인과 아이의 진단·치료 과정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지 않은 일반 전문의가 소아 환자까지 보게 만든 건 소아청소년과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모르는 '탁상행정의 극치'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 회장은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해서는 큰돈을 벌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초저출산 시대 아픈 아이를 한 명이라도 살려내는 데 대한 보람과 긍지로 진료에 나서는 게 지금의 전문의들"이라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제반 환경만 조성해줘도 충분한데 정부가 이를 왜 외면하고만 있는 것이냐"고 울먹였다.
그는 몰락하는 소아청소년과의 회생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경제적 자립'으로 꼽았다. 코로나19(COVID-19) 환자의 집중 치료를 지원했듯, 병실료와 수가를 보전해 의사가 진료량이 적어도 병원을 유지할 수 있게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약을 만드는 제약사에게 '동냥'할 필요가 없도록 사용량 연동 약가 인하제 등을 손 볼 필요가 있다고도 제안했다.
최 회장은 "아이에게 쓰는 약들은 설령 필수적으로 써야 해도 매번 공급 부족에 시달린다. 제약사가 돈이 되지 않아 약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라며 "아이가 원하는 시럽제는커녕 수년간 성인용 알약을 잘라서 처방해주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진정으로 소아청소년과를 필수 의료로 구분해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성인과는 별도로 아동 정책을 수립, 실행할 수 있도록 어린이건강지원법을 재정하고 보건복지부 내 전담부서를 조속히 신설해야 한다"며 "소아청소년과만의 '특혜'가 아니라 벼랑 끝에 몰린 필수 의료를 살리고 출산율을 반등시킬 '대책'으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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