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패키지 안착 못하면 '의료붕괴' 올 것…'큰 병원' 구조조정 불가피"

머니투데이 박정렬 기자 | 2024.03.22 14:29

[인터뷰] 신응진 대한병원협회 의료현안 관련 상황대응위원회 위원장

신응진 대한병원협회 의료현안 관련 상황대응위원회 위원장

정부가 지난 20일 2025학년도 전국 의과 대학별 증원 계획을 확정한 가운데 이들의 교육·수련을 책임질 2차·3차 병원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의대 졸업 후 병원에 오는 전공의의 역할은 이전과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정부가 경증은 1차 병원, 중증도·중증은 2차·3차 병원이라는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어 환자 수도 지금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병원 입장에서는 전공의 처우 개선과 더불어 수익은 감소하는 상황이 한꺼번에 닥친 셈이다. 서울대·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세브란스병원 등 '빅5 병원'을 포함해 비대해진 대학병원의 체질 개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신응진 대한병원협회 의료현안 관련 상황대응위원회 위원장(순천향대학교 중앙의료원 특임원장)은 "이제는 정부가 수가체계 조정, 환자 의료 이용 관리가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안착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며 "병원도 인력, 진료 시스템 전반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신응진 위원장은 현재 다수의 병원이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빅5 병원'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하루 10억원 이상의 적자가 나는 상황이다. 상급종합병원 외 대학병원도 사정이 좋지 않긴 마찬가지다. 인제대 상계백병원은 최근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월급반납동의서를 받았고 무급휴가, 병동 통폐합 등 인건비 감축에 나선 병원도 부지기수다. 신 위원장은 "대부분 수련병원은 당장 다음 달 직원 월급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제대 상계백병원은 최근 병원장 명의의 '급여반납동의서'를 전체 교수에게 발송했다. /사진=인제대 상계백병원

대학병원이 직면한 운영난은 값싼 전공의를 쓰며 '박리다매'식 진료를 본 게 주요 이유다. 전공의는 피교육생인 동시에 수술, 입원 등 진료 과정에 일정 역할을 담당하는 노동자다. 인건비 절감 등을 위해 주요 대학병원은 전공의 비중을 30~40%로 유지했는데 이들이 한꺼번에 빠지면서 의료 공백이 발생했다.

하지만 대학병원이 전공의로 부족한 의사를 채우며 많은 환자를 볼 수밖에 없었던 건 건 저수가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점에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 등 주요 의료단체는 물론 정부도 일정 부분 동의하고 있다. 신 위원장은 "전공의에게 집중된 의료체계의 허점을 정부·의료계가 모두 알았지만 인건비 등을 이유로 손을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지금의 수가 체계로는 중증, 응급 질환만 봐서는 대학병원을 유지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공의 수련 환경은 지금처럼 선배에서 후배로 전수되는 '도제식 교육'에서 탈피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기반으로 정부가 소방·경찰처럼 '국가 인프라'에 기준으로 해 관리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신 위원장은 "앞으로는 단일 병원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모든 병원을 커버하는 '공통수련'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일본, 미국, 영국에서는 이미 전공의가 지역에 있는 병원을 로테이션(순환근무) 하면서 다양한 환자, 상황을 경험하며 능력을 쌓는다"고 말했다. 현재 80시간에 달하는 전공의 근무 시간도 단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부천 원미구 순천향대부천병원 정형외과 병동에서 간호사가 환자와 짐을 다른 병동으로 옮기고 있다./사진=[부천=뉴시스] 김명년 기자

또 병원의 구조조정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지금까지는 전공의의 역할을 늘려 버텨왔지만 앞으론 불가능하고, 정부도 의료전달체계 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만큼 전공의 수련을 책임지는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의 변화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 위원장은 "특히 수련병원(종합·상급종합병원)의 역할과 구조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며 "의료 인력의 숫자와 배치는 물론 지금처럼 모든 진료과를 다 설치해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 발열과 같은 경증 환자가 1차, 2차 병원으로 가도록 인식을 개선하고 일정 부분 제한해야 '응급실 뺑뺑이'의 재발을 막고 한정된 의료 자원을 모두가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정부는 현재 개별 의료 행위를 보상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난이도와 위험도 등을 고려해 보상하는 '가치 기반 지불제도'로 전면 개선할 방침이다. 의료기관이 진료를 늘리기보다 치료에 집중하고 성과를 극대화하는 경우 적절한 보상을 받도록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고난도 의료행위에 대해 추가적인 보상을 주는 '보완형 공공정책수가'도 도입했다. 신 위원장은 "정부의 수가 체계 개선 방향은 궁극적으로 적은 의료 인력이 적은 환자를 봐도 유지되는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런 정책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현재 경영난에 직면한 병원들이 연쇄적으로 도산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그는 밝혔다. 신 위원장은 "서울 중심에 있던 서울백병원도 도심 공동화가 되면서 적자가 누적돼 문을 닫았다. 지금 위기를 겪는 병원이 한둘이 아니다"며 "수가체계 개편, 전공의 지원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당장 병원이 문 닫을 수 있다. 2000명 의대 증원으로 앞으로 전공의도 크게 늘 텐데 그때 버틸 수 있는 병원도 거의 없을 것"이라며 정부의 조속한 대응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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