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속 8800조원 '꿈틀'…일본 '버블' 트라우마 잊고 돈 굴릴까?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 2024.03.23 08:27
일본은 저축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버블 붕괴에 따른 트라우마와 오랫동안 이어진 경기 불황 속에 자산을 지키는 방법으로 투자 대신 안전한 저축을 택했기 때문이다. 일본 가계 저축액은 약 8800조원에 이른다.

15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에서 사람들이 벚꽃 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고 있다./AFPBBNews=뉴스1
그러나 이제 일본이 디플레이션 수렁에서 벗어나 인플레이션 시대로 진입하면서 일본인들의 보수적 투자 관점도 변화할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통장에서 잠자던 돈이 활발하게 증시나 부동산 등 실물 자산으로 이동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가 보유한 현금과 저축액은 1000조엔(약 8800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달러로 환산하면 약 7조달러로 독일과 영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수준이다.

일본은 가계 금융자산 가운데 저축이 52.6%를 차지할 정도로 투자에 보수적이다. 비교하자면 미국은 12.6%에 그치며 유로존도 35.5% 정도다.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후 자산 가치 폭락을 경험한 일본인들은 자산을 지키기 위해선 저축만 한 게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내려가고 화폐 가치가 상승하는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현금을 보유하는 건 합리적 선택으로 여겨졌다. 경제 호황을 경험한 적 없는 젊은 세대 역시 소비나 투자보단 저축을 선호한다.

일본 닛케이225지수 추이/그래픽=최헌정
하지만 이제 인플레이션 시대로 이동하면서 일본인들의 투자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주가 상승과 맞물려 지난해 일본 가계가 보유한 주식과 채권 가치는 2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현금 저축은 1% 증가에 그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일본 서점엔 금융 지식과 투자 방법을 안내하는 책들로 가득하다고 전했다.

인베스코자산운용의 토모 기노시타 글로벌 시장 전략가는 "시장 급등으로 많은 가계가 상당한 자본 이득을 맛보면서 투자에 대한 관점이 점점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계가 정부 정책에 응답한다면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자산운용사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은 가계 저축액의 2%만 증시로 이동해도 규모가 1400억달러(약 187조원)에 달한다며 시장이 반응하기에 충분하다고 봤다.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자금으로도 일본 증시 랠리를 촉발했단 설명이다.

일본 정부도 시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개인 투자자들을 증시로 유인하는 데 적극적이다. 올해 1월부터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를 대폭 확대하면서 비과세 기간을 평생으로 연장했고, 연간 납입 한도액을 120만엔에서 360만엔으로, 누적 한도를 600만엔에서 1800만엔까지 각각 3배씩 늘렸다.

일본을 방문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 역시 21일 니혼게이자이 인터뷰에서 "일본 경제는 본격적인 선순환에 들어섰다. 일본 주식은 여전히 상승 여지가 있다"면서 특히 "올해부터 시행된 NISA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일본 경제와 기업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으로 인해 적극적인 투자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여전히 일본의 임금 인상률은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가계 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일본의 1월 실질 임금은 전년 대비 0.6% 감소해 22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마이니치신문의 최신 조사에서 응답자 중 87%는 경제가 좋아지고 있음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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