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콧은 없었다. 2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마련된 매표소 창구에 '전석 매진' 표시가 붙었다. 중년 남성 2명은 오후 3시쯤 현장 티켓을 구하려 창구를 들렀지만 매진 소식을 듣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날 저녁 8시 태국 대표팀과 2026 FIFA 월드컵 2차 예선 경기를 치른다. 대표팀 내분 사태가 불거진 후 처음 열리는 A매치다.
대한축구협회(KFA)가 운영하는 기념품 천막 상가에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표팀 공식 유니폼 판매처에는 100여명이 줄을 섰다. 줄 설 공간이 부족해 줄은 금세 구불구불한 모양이 됐다. KFA가 적힌 흰 쇼핑백을 든 사람들도 다수였다.
경기 시작 4시간 전, 경기장 외부에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팬들은 백호 인형 탈을 쓴 직원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다섯 차례 손바닥을 부딪쳤다. '7번 손흥민'이 적힌 대표팀 유니폼과 이강인이 속한 파리 생제르맹 유니폼을 입은 팬들도 눈에 띄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자 이들은 'KOREA'가 적힌 머플러를 목과 어깨에 칭칭 감았다.
이날 경기를 보러 온 송솔비씨(25)는 "가족끼리도 싸울 수 있는데 선수들끼리 다툰 건 큰 문제가 아니"라며 "경기를 보러 온 건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장 경기 관람은 처음이라는 정재우씨(28)는 "축구협회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면서도 "관중석에 빈 공간이 보이면 선수들이 다툼 탓이라고 오해해 위축될까 싶은 마음에 선수들을 직접 응원하러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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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전 하루 전, 이강인 사과 나서…손흥민도 "똘똘 뭉치겠다"━
축구협회 쇄신을 요구하는 취지기도 했다. SNS에선 관중석을 비워달라는 문구가 담긴 포스터가 올라오며 보이콧 캠페인 동참을 독려했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정몽규 회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A매치에 관중이 얼마나 몰리는지가 후원 수익을 결정하기 때문에 보이콧 운동으로 정 회장과 축구협회를 압박할 수 있다는 논리다.
대표팀 공식 서포터즈 '붉은악마'를 비롯한 축구 팬들은 보이콧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붉은악마는 "이번 사태는 축구 협회 잘못"이라며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이 응원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이강인이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 사과하며 여론은 바뀌었다. 이강인은 전날 태국전 대비 공식 훈련에 앞서 "아시안컵 기간 많은 사랑과 응원을 해주셨는데 그만큼 보답하지 못하고 실망하게 해드려 죄송하다"며 "모든 분의 쓴소리가 제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더 좋은 축구선수뿐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손흥민도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강인이가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며 "걱정하는 만큼 분위기가 나쁘지 않고 더욱 더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전 전날 이강인이 일부 선수들과 따로 탁구를 하려다 이를 말리는 선수들과 충돌하는 일이 있었다. 손흥민이 당시 손가락 탈구 부상을 입었으며 대표팀은 준결승전 경기에서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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