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종주국이 영국과 미국이라면 스크린 골프 종주국은 한국이다.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접근성을 바탕으로 스크린골프가 레저 스포츠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순항 중이던 스크린 골프 업계는 '저작권'에 발목을 잡혔다. 골프코스를 설계한 3개사는 업계 선두 주자인 골프존이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약 31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들 업체는 '골프코스는 창작성을 갖추고 있어 저작권의 보호대상인 저작물에 해당하며 골프존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취지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1심 법원으로부터 받아냈다.
이 판결은 서울고등법원 2심 재판부에서 뒤집혔다. 항소심에서 골프존을 대리한 법무법인 세종의 윤주탁(사법연수원 33기)·방세희 변호사(변호사시험 3회) 등은 골프코스 설계도가 '창작성' 있는 저작물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며 재판부를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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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한 저작권법…"정답은 없다"━
저작권은 지식재산권(IP) 중 가장 넓고 쉽게 인정되는 권리다. 특허권·상표권·디자인권은 등록해야만 그 권리가 인정되지만, 저작권은 저작물이 만들어진 순간 권리가 생긴다. 저작권법에서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독자적 성격을 갖춘 창작성이 없으면 법적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중요한 건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이디어가 아닌 '표현'이라는 점이다. 아이디어에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아이디어와 표현을 나누는 절대적 기준은 따로 없다.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재현되는 이유다. 윤 변호사는 "아이디어는 공중이 누려야 할 영역, 표현은 독점이 가능한 영역으로 이를 구분하는 데는 정답이 없다"며 "정책적 판단이나 시대적 흐름이 반영돼 관련 분쟁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이디어와 표현의 경계가 모호한 만큼 국내외 눈문, 유사 판례 등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정교하게 방어논리를 수립해야 했다. 방 변호사는 "저작권 소송 분쟁 양상이 워낙 다양해 개별 사안마다 판단 근거로 쓰이는 증거들이 다르다"며 "골프코스 설계도 창작성과 관련해 미국골프협회(USGA) 골프장 건설에 대한 가이드라인 등 여러 근거 자료들을 바탕으로 골프코스의 그린, 페어웨이, 벙커 등 구성요소들은 골프 경기라는 기능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요소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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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분쟁 막으려면…" IP 분야 베테랑의 조언━
골프코스 설계도의 창작성을 부정한 최초의 판례를 끌어낸 비결은 세종 IP 그룹 변호사들의 '내공'이다. 윤 변호사는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특허법원 판사와 서울고법 지식재산권전문재판부 고법판사 등을 지낸 전문가다. 2021년 세종에 합류해 IP 그룹 특허팀장을 맡고 있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방 변호사는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국내외 주요 기업의 소송과 자문을 맡아왔다.
방 변호사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이 발전하게 되면 지식재산권 분야 소송과 자문 수요 자체가 확실히 증가한다"며 "분쟁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산업 메커니즘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바탕으로 각 분야 법을 전문으로 하는 팀들과 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변호사는 "세종이 저작권 분야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아온 만큼 전문 인력 양성이 잘 돼 있다는 강점이 있다"며 "저작권 분쟁 특성상 계약서 등 여러 제약으로 법적 보호를 받는 데 한계가 있는 경우가 많아 가급적 분쟁 발생 전 단계에서부터 전문가 자문하기를 권유한다. 사전 자문만 잘 해도 저작권 분쟁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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