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4억 불러도 "안 가요"…지역의료 위기, 정부가 나선 이유

머니투데이 박정렬 기자, 구단비 기자 | 2024.03.20 09:00

[MT리포트]전공의 공백 한 달, 드러난 K-의료 민낯(下)

편집자주 |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출근을 거부한 지 한 달째다. 정부가 '면허 정지'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대부분은 돌아오지 않아 환자와 병원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교수들마저 단체 사직을 예고하면서 '강 대 강' 대치가 팽팽하다. 갈등을 봉합할 해법이 시급한 이유다. 이번 전공의 부재가 중증·응급질환 진료 시스템을 마비시켰다는 점도 이번 기회에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공의 부재가 보여준 대한민국 필수·지역 의료의 민낯을 분석하고 강 대 강 대치의 해법을 찾아본다.



"공보의 떠나니 감기약도 못 타" 위기의 지역 의료, 인력·체계 확 뜯어고친다


전남 화순군 이서보건지소에 공보의 차출로 인한 상황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있다./사진=[화순=뉴시스] 이영주 기자

지역 의료기관은 오랜 시간 서서히 붕괴해왔다. 인구 감소로 병원 규모는 축소됐고 의사가 떠나며 환자마저 발길을 돌렸다. 그나마 지역 의료 공백을 메꾸던 보건소와 의료원마저 공중보건의사(공보의)의 감소로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전공의 집단 이탈로 지난 11일부터 한 달간 공보의 138명이 20개 상급종합병원에 차출된 후로 일부 지역 보건소는 X선 등 기초적인 검사가 중단됐다. 의사가 없어 감기·설사와 같은 급성질환에 제때 약조차 처방받지 못하는 곳도 생겼다. 의료원의 구인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전국 35곳의 지방 의료원 중 절반 이상이 여전히 연봉 3억~4억원을 제시하며 의사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증질환을 책임지는 지역 2차·3차 병원도 사정이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강원도 유일의 거점 국립대병원인 강원대병원은 소아암을 보는 전문의가 없어 지난해 국립암센터와 업무협약을 맺고 매주 2회 의사를 '수혈'받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소아청소년과 의사 11명 중 4명이 줄줄이 사직한 결과다. 가까운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은 최근 3년 사이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 600여명이 퇴사했다. 기초체력이 약한 만큼 전공의 이탈로 인한 타격도 심각하다. 부산대병원은 지난 8일부터 비상경영체계에 돌입했고 경북대병원은 일찌감치 병동을 통폐합했다. 전남대병원은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200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 근무 의사의 의대 졸업지역 및 수련 지역 비율/그래픽=조수아
정부는 이렇듯 취약한 지역의료를 되살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먼저 인력 양성이다. 정부는 내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면서 1600명은 비수도권에 배정하고, 신입생의 60%는 지역 인재로 충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의사가 늘면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증가하는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한편 이들이 각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의료 인프라 조성을 동시 추진할 방침이다.

실제 지역 출신이거나 해당하는 대학·병원에서 교육과 수련을 받은 의사는 그 지역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현재 의료정책연구원)는 2020년 발간한 '의사의 지역 근무 현황 및 유인·유지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국내 활동 의사 4181명 중 지역에서 근무하는 1382명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의대 졸업지역이 광역시·도인 경우 지방 근무 비율은 각각 60.1%와 39.5%로 수도권인 의사의 지방 근무 비율(13%)을 크게 앞섰다. 전공의 수련을 받은 곳이 광역시·도인 활동 의사의 지방 근무 비율 역시 각각 83.4%와 65.6%에 달했다. 수도권에서 수련받은 경우는 이 비율이 15.6%에 불과했다. 당시 의협은 "지역의 의사 인력 불균형 분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과대학이 소속된 출신 지역의 학생을 의사로 양성하는 것을 지원하는 정책이 효과적"이고 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로비에 대기인수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환자가 치료를 위해 '수도권 큰 병원'으로 상경하는 일이 없도록 의료전달체계 개편도 추진한다. 총액 인건비, 총정원 등의 규제를 혁신해 지역의료의 중심이 되는 거점 국립대병원을 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서울성모·삼성서울병원 등 '빅5 병원' 수준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경증 환자는 1, 2차 병원이 맡고 중증 환자는 3차 병원이 담당하는 '지역의료 혁신 시범사업'에 3년간 최대 500억원 규모를 지원하는 등 의료전달체계 재구축과 전문의 중심병원 시범사업 등에 총 7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1~3차 병원을 포괄적으로 지원해 지역 주민이 경증에서 중증질환까지 거주지에서 제때, 모두 치료받을 수 있는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게 정부의 최종 목표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1일 서울 영등포구 명지성모병원에서 의사집단행동 대비 현장점검을 위해 이동하며 의료진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아이러니하게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한 전공의 이탈은 지역 병·의원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전공의 없이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되는 2차 종합·전문병원은 3차 상급종합병원의 빈자리를 상당 부분 채우며 존재감을 뽐냈다. 지역에서도 눈에 띄는 병원이 적지 않다. 예컨대 경상북도 안동시에 위치한 1000병상 규모의 안동병원은 전공의 이탈이 본격화한 지난달 19일부터 한 달간 전년 동기 대비 입원 환자 수는 1838명에서 2118명으로 280명, 수술 건수는 795건에서 868건으로 73건 증가했다. 응급실 내원·입원 환자도 모두 10% 이상 증가하며 지역 의료공백 해소에 일조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작지만 강한' 2차 병원의 육성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3~4개의 지역 종합병원을 육성해 응급, 심장·뇌, 외상 등 중증·응급 환자에 대한 치료 역량을 강화하기로 했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의료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올해 안으로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의료 취약지역에서 분만하는 경우 산부인과에 수가(의료비)를 더 주고, 이달 중으로 신생아 중환자 치료를 위한 맞춤형 지역 수가를 신설하는 등 직면한 필수의료 공백 해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료 수요에 맞게 절대적인 의사 수를 늘리는 한편, 필수 의료 수가도 끌어올리고 지역의료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이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개혁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선 선호, 국내에선 기피'…위기의 필수의료, 해결방안은


'필수의료 살리기' 두고 엇갈리는 정부와 의사/그래픽=윤선정 /사진=뉴스1, 뉴시스

"힘든 거 하기 싫어하는 건 사람 본능 아닐까요? 편하게 돈 벌 수 있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갖고 살 수 있으면 당연히 그걸 택하지 왜 필수의료를 택할까요. 반대로 물어볼게요. 어려운 일과 쉬운 일이 있으면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익명을 요구한 한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 A씨는 19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흉부외과는 심장과 폐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된 곳이지만 업무 강도가 높고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 대표적인 기피과 중 하나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현재 흉부외과 전공의는 78명뿐이다.

실제로 서울대병원의 '2024년도 레지던트 모집 지원현황'을 살펴보면 심장혈관흉부외과의 경쟁률은 0.3:1에 불과했다. 소아청소년과는 0.9:1, 가정의학과는 0.7:1, 응급의학과는 0.8:1, 산부인과도 1.1:1에 불과했다. 내과와 외과는 1.3:1, 1.4:1이었지만 피부과는 2.0:1, 안과는 2.0:1, 정신의학과는 2.3:1이었다.


반면에 미국은 흉부외과는 인기과 중에 하나다. 미국의 의사 전용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닥시미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의사 중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의사 중 2위가 70만6775달러(약 9억4545만원)를 받는 흉부외과 의사로 꼽혔다.

A씨는 "선진국은 흉부외과가 인기과 중 하나다. (그 이유는) 지금 여기서 제가 받는 연봉의 5배 이상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또 흉부외과에서 필요한 시스템이 다 구비돼있다. 한국에선 인력이 부족하거나 장비가 없어서 쩔쩔매는데 선진국은 모든 시스템을 다 구비해놓고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흉부외과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기피과인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등도 일이 고되고 환자들은 까다롭고 돈은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이유는 급여와 비급여 진료 항목의 분류에서부터 시작됐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 항목인 급여는 국가와 환자 본인이 일정 비율에 따라 분담한다. 급여로 정해진 진료 항목은 금액이 정해졌지만 비급여의 경우 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금액을 정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필수의료과 전문의 B씨는 "필수의료를 급여로 지정할 당시에는 국가 재정상 문제로 보험가를 낮게 책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현재는 비급여인 피부미용 분야가 커지면서 의료 인력 유출도 많아졌는데 정부가 이런 방향 설정을 준비하는 과정은 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패키지는 실효성이 없다고 봤다. 무작정의 재원 투입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자해 필수의료 수가를 집중적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의료계는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우려하며 현재의 의료체계가 전면 개편돼야 한다고 봤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더 나은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는 제한된 재정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시스템 유지는 어려울 것이라고도 봤다. 병원 문턱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의료계와 환자 양측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재훈 가천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현재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발표하면서 예산도 투자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문제는 무제한의 비용을 언제까지 투입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라며 "예산을 무작정 쏟아붓는 것에 대해선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결국은 정부는 의사에게 '앞으로는 처우가 지금보다 조정될 수 있지만 일터를 안전하고 오래 지킬 수 있다'고 말하고 환자에게 '앞으로는 병원에 쉽게 갈 수 없지만, 더 심각한 증세가 나타났을 때 보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며 "문제는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으려면 정부와 의료계, 의료계와 환자 등이 서로 신뢰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필수 의료 지원을 위한 건강보험 수가제를 개혁하겠다고 했다. 기존 행위별 수가 제도를 가치 기반 지불제도로 바꾸는 것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1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행위별 수가 제도는 지불의 정확도가 높은 장점이 있는 반면 행위량을 늘릴수록 수익이 생기기 때문에 치료 성과나 의료비 지출 증가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개편 작업을 위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내에 정부, 전문가, 의료계가 참여하는 의료비용분석위원회도 구성한다. 박 차관은 "기존 단점을 극복하고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의료서비스의 목적인 국민의 건강 회복이라는 성과와 가치에 지불하는 가치 기반 지불 제도로 혁신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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