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급경사에서 체력시험 중인 우리 경제

머니투데이 김준동 법무법인 세종고문· 前대한상의 부회장 | 2024.03.21 02:03
김준동 고문(법무법인 세종)
기다리던 봄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봄소식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남쪽으로부터 올라오는 봄기운은 벌써 서울의 구석구석에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예년보다 열흘 이상 빠른 봄기운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뻗는다. 이번 주말에 섬진강 벚꽃축제가 시작된다는데 조만간 봄기운이 지리산 자락을 타고 올라가 거대한 산은 전국의 등산인으로 붐빌 것이다. 지리산 가는 주말 기차표는 벌써 몇 주째 만석이다. 등산인은 봄과 더불어 지리산에서 설악산으로 북진하고 가을과 더불어 단풍을 따라 설악산에서 지리산으로 남진한다. 철 따라 남북으로 이동하는 등산인파는 한반도의 거대한 파도다.

도시 주변의 산들도 주말이면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로 부산스럽다. 등산은 우리나라 역동성의 일등공신이다. 산을 오르며 거친 숨과 땀을 내면서 좋은 생각과 신선한 아이디어로 빈자리를 채운다. 산은 우리로 하여금 신선한 생각에너지를 충전시킨다. 등산을 하다 보면 가끔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다.

지리산 이야기다. 지리산에는 급경사 등산로가 몇 개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산리에서 천왕봉 구간이다. 아마 설악산 오색구간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는 급경사로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등산로일 것이다. 정상까지는 쉬지 않고 3~4시간 걸어야 한다. 일출을 봐야 한다는 기대와 강박감에 땀에 젖어 법계사의 새벽 종소리를 들으며 정신없이 걷는다. 내 평생 언제까지 여기를 걸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이 등산로는 개인적으로 설악산 오색 등산로와 함께 체력을 시험하는 구간이다. 급경사라서 하산할 때는 최단시간에 떨어지는 길이다. 그래서 천왕봉 정상에 오르면 크게 2개의 선택로가 있다. 다시 급경사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완만한 장터목 하산길을 택할 것인가.


요즘 고령화, 저출산이 국가적인 이슈가 되면서 경제에서는 잠재성장률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잠재성장률은 쉽게 표현하면 우리 경제의 체력이 튼튼해지는지 약해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다소 엉뚱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곡선은 지리산의 '장터목-천왕봉-중산리' 고도선과 닮았다. 실제 그래프를 그려봐도 그렇다. 둘 다 서서히 높아졌다가 정점에서 급격히 떨어지는 모습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제체력 증가율은 1970년대 중반 8%대에서 1980년대 9%대로 장터목에서 천왕봉 올라가듯이 완만히 상승했다. 그러나 천왕봉에 올라선 1990년대 들어서부터 갑자기 7% 이하로 고꾸라진다. 2000년대 4%대, 2010년대 3%대로 떨어지더니 최근 2020년대에는 2%는 물론 1%대까지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체력은 중산리 쪽의 급경사를 타고 내려가는 모습이다. 우리에게 선택은 무엇인가. 장터목길을 갈 것인가, 계속 중산리길로 갈 것인가. 우리나라 경제는 중산리 급경사에서 체력시험 중이다.

좋은 생각은 걸으면서 나온다. 니체는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위대한 철학자나 음악가들에겐 걷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칸트도 그렇다. 사람들은 칸트가 걷는 시간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선 칸트는 철학적인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 그렇게 매일 걸었는지 모른다. 베토벤도 그렇다. 작곡의 영감을 얻기 위해 자연을 누볐고 당대 지성인 괴테를 처음 만나서도 함께 걸었다. 등산도 좋고 산책도 좋다. 봄이니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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