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고수해 왔던 일본이 17년 만에 금리를 올린 배경에는 물가와 임금이 있다. 사진은 일본 도쿄 시부야 거리 전경/AFPBBNews=뉴스1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고수해 왔던 일본이 17년 만에 금리를 올린 배경에는 물가와 임금이 있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대를 달성한 데다 기업들이 임금을 크게 올리면서 물가와 임금 상승의 선순환 고리가 완성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더 이상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탈출용 정책 수단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번 금리 인상 조치가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 종료를 의미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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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물가, 반갑다"는 일본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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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한 건 지난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금리를 낮추기만 했지 올리지 못했다. 급기야 2016년 2월엔 경기 부양을 위해 마이너스(-0.1%) 금리 정책도 도입했다. 마이너스 금리는 돈을 맡기면 이자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관료를 받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시중은행들은 여유 자금을 중앙은행에 맡기지 않고 기업·가계 대출로 시중에 돈을 풀기에 급급했다.
이 같은 초완화 통화 정책에도 일본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월별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를 밑돌기 일쑤였고 심지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달도 많았다. 소비자 입장에선 '물가가 낮아지면 좋은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물가 하락은 임금 감소를 부르고 이는 경기 전반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를 낳는다.
길고 긴 디플레이션 터널에 빛이 보이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지난해 일본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2% 올라 1982년(2.8%)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는 3개월 연속 2%대 물가 상승률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해제 우선 조건으로 제시해 온 '2%대 물가 상승률'을 충족한 셈이다.
미국·유럽 등이 주요 국가들이 높은 수준의 기준금리를 낮추기 위한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 조건으로 소비자 물가가 2%대까지 떨어지는 것을 꼽는데 일본은 정반대 상황이었다. '2%대 인플레이션'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경기 침체가 심각한 일본의 경우 물가가 안정적으로 오르는 것을 정책 과제로 삼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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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더 올려줄게" 달라진 일본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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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AFPBBNews=뉴스1 일본은행이 전격 피벗에 나설 수 있었던 건 기업들의 잇단 임금 인상 결정 덕분이다. 물가만 뛰고 실질임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금융당국이 기대하는 경기 선순환 요건을 갖추기 어려운데 올 들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 단체인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일본 기업(직원 1000명 이상) 평균 임금 인상률은 5.28%로 집계됐다. 이는 1991년(5.66%) 이후 33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로 물가 상승률을 충분히 상쇄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일본 기업 임금 인상률은 평균 3.6% 였는데 고물가가 지속돼 실질 임금이 오히려 떨어졌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토요타·닛산·혼다 등 자동차 업계를 비롯해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가와사키중공업·히타치제작소·파나소닉홀딩스·후지쓰 등 일본 대표기업들은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를 전면 수용했다. 특히 일본제철은 노조 요구액(월 3만엔 인상)보다 많은 월 3만5000엔을 올려주기로 했다. 정기승급을 포함한 인상률은 14.2%에 달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번 마이너스 금리 정책 해제와 관련 "일본 경제는 금리가 있는 세계로 역동성을 되찾는 출발점에 서게 됐다"며 "임금도, 물가도, 금리도 오르는 플러스(+) 경제로의 전환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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