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보조금 전쟁

머니투데이 강기택 산업1부장 | 2024.03.19 04:11
인텔에 이로운 것은 미국에 이롭고 미국에 이로운 것은 인텔에 이롭다. 인텔 대신 마이크론을 넣어도 마찬가지다. TSMC와 대만을 같은 문장에 대입해도 된다. 적어도 국가와 기업이 한팀이 돼 싸우는 칩워의 전장에서 기업의 패배는 곧 국가의 패배다.

미국은 한국, 대만, 일본과 함께 이른바 '칩4 동맹'을 통해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시도를 지속해 왔다. 반도체에 대한 접근을 원천봉쇄해 경제와 산업 뿐 아니라 군사 영역에서 중국을 주저앉히겠다는 의도다. 최근 미국의 행보는 '칩4'에서 더 나아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추구하고 있다. 중국의 공격 위협에 노출된 아시아 공장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면서 한편으로 자국 기업이 챔피온이 되도록 밀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이 지난달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에서 "과거 전 세계 반도체의 40%를 생산했던 것처럼 미국이 반도체 생산을 주도하기를 원한다"는 발언은 그 단면이다. 그는 '칩스법(반도체지원법) 2'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팻 겔싱어 인텔 CEO(최고경영자)는 이날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텔에 최첨단 공정인 1.8나노 칩 설계를 주문했고 올해 말 양산에 나선다"며 "2027년부터 1.4나노 공정도 양산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2030년까지 파운드리 세계 2위"라는 야심도 감추지 않았다.

겔싱어는 "지난 50년 동안 석유매장량이 지정학을 규정했다면, 앞으로는 반도체 제조공장이 어디에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종종 반도체를 석유에 빗대왔다. 러몬도는 칩스법의 보조금 규모가 1960년대 우주경쟁 이래 가장 크다고 했다. 석유든 우주든, 패권을 염두에 둔 사고방식이다. 이런 마당이니 국가든 기업이든 공급망 재편 시기에 한 축을 담당하지 못하거나 시장을 잃으면 번영과 발전은 남의 몫이 된다. 자원개발보다 반도체공장 유치가 국가의 운명을 가르므로, 각국이 펼치는 보조금 전쟁은 '열전'이 될 수 밖에 없다.


미국은 2021년 3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산업 등의 공급망을 점검하라고 행정명령을 내렸고, 2022년 이른바 칩스법을 발표했다. 527억달러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기로 하고, 이중 280억 달러를 반도체 제조공장 보조금으로 주는 게 핵심이다. 이에 뒤질세라 유럽연합(EU)은 지난해 430억 유로를 지원하는 유럽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9%인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점유율을 2030년에 20%로 높이겠다고도 했다. 80%인 아시아 점유율을 2030년에 50%로 낮추고 미국과 유럽이 각각 30%, 20%를 갖겠다는 겔싱어의 발상과 일치한다. 인텔이 유럽에 10년간 8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공교롭지 않다.

일본은 2021년 반도체산업을 살리기 위해 2조엔의 보조금을 내걸었고 추가 지원금도 푼다. 2030년까지 반도체 매출을 지금보다 3배 이상인 15조엔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인도도 반도체 제조 기업에 100억 달러의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반도체 투자에 대해 세액 공제를 하고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하는 등 여러 정책을 내놓았지만 재정부담과 특혜논란 등을 의식해 보조금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여야 모두 총선을 앞두고 반도체 산업 육성을 강조하지만 립서비스에 가깝다.

돌이켜 보면, 2022년과 2023년 반도체 수출 부진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적자를 내고, 외환·주식시장이 타격을 입었다. TSMC가 대만경제와 안보를 떠받치며 '수호신'이라 불리는데, 국내 반도체 기업의 역할과 기여도는 그보다 덜 하지 않다. 삼성에 이로운 것이 국가에 이롭고, 국가에 이로운 것은 삼성에 이로운 시대다. 국가를 정부나 정권, 정파로 바꿔도 다르지 않다. 미국과 일본이 삼성전자에 주는 보조금을 아무도 특혜라고 하지 않는다.이런 판과 흐름을 볼 줄 안다면, 모두가 패하는 프레임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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