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 예산공무원 전성시대의 그늘[우보세]

머니투데이 김훈남 기자 | 2024.03.18 05:13

[우리가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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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총선을 26일 앞둔 15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종합상황실에 현황 등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뉴스1

세종 관가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인기있는 업무가 '예산'이다. 곳간지기가 언제 중요하지 않은 적이 있었을까. 가끔 소수의견으로 나오던 기획이나 인사, 세제 등의 업무도 들어갈 틈이 없다. 예산의 시대는 국회와 정치에 치이는 정부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돈줄이라도 쥐어야 국회 상대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예산 업무가 각광받지만 '행정고시 1등 = 기획재정부' 공식이 깨진 것 역시 관가의 현실이다. '제일'이라는 예산 업무조차 결코 영광스럽지 않고 보상마저 적다는 게 젊은 관료들의 판단이다. 힘들게 행시까지 붙은 나라의 인재들은 더이상 가장 중요한 위치에서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행정부의 역할과 역량은 떨어지는 반면 국회의 입김은 강해진다.

선거의 계절이 돌아오면 그나마 좁은 정부의 입지는 더 쪼그라든다. 정책의 시급성과 중요도보다 대중에 인기 있는지가 우선한다. 조금이라도 지지율에 부담이 될 만한 의제는 뒤로 밀린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다디단' 간식같은 의제만 무대에 나온다.

'쓰디쓴' 알약같이 필요하지만 해야만 하는 과제는 스톱이다. 정치는 생물이고 민심을 가늠할 수 없기에 조금이라도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면 공무원에게는 스톱 신호가 켜진다.

지난해부터 일찌감치 미뤄뒀던 전기·가스요금 같은 공공요금 현실화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초 발표하려 했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등이 대표적인 쓴 약이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등 양대 공기업이 올해 한해동안 내야하는 이자만 6조원 안팎이다. 하지만 비싼 값에 에너지를 만들거나 수입해 싸게 팔아야하는 역마진 구조에 여전히 갇혀 있다.


11차 전기본도 기약이 없다. 전기본 작성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당초 예정보다 초안 발표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공무원이 어떻게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요"라고 답한다.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에 따라 원자력발전 비중 확대가 기정사실화된 11차 전기본을 총선 앞에 발표하기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정부는 멈춰있는데 정치는 계속 직진이다. 산업단지와 인프라, 지원대책 등 조단위 개발·투자 계획이 쏟아진다. 이 계획이 합리적인지, 필요한 것인지 점검해야 할 부처는 들러리 서는 것조차도 벅차다. 공무원 중 제일이라는 예산 담당이라도 낄 자리가 아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최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윤석열정부의 경제정책 성과를 소개했다. 그가 꼽은 가장 큰 성과는 재정건전성 확보를 통한 대외신인도 유지다. 한 총리는 "재정건전성과 금융 정책을 국제적 트렌드하고 맞추는 것은 도저히 양보할 수 없고 그런 노력을 인정해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두번째로 경제정책을 잘한 국가라고 평가했다"고 반박했다.

이같은 총리의 자평이 무색하게 정치는 여야 구분없이 인기를 향해서만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모든 정책에 붙는 영수증과 청구서를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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