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이폰으로 집과 사무실, 자동차를 모두 원격 제어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던 애플 창업자이자 당시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GM 인수 프로젝트를 일찌감치 폐기해 버렸다.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고 '혁신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던 때였지만 자동차로의 사업확장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잡스의 의사 결정은 빨랐고, 애플은 잘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했다.
# 2014년 애플은 또 다시 자동차로 눈을 돌렸다. '애플워치'를 출시하고 다음 프로젝트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 때, 시장의 화두는 자율주행 기술이었다. 구글이 자율주행 테스트에 나섰고, 테슬라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었다. 잡스 사망 뒤 애플 CEO에 오른 팀 쿡은 자율주행 시장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빅테크 업계 연봉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애플 엔지니어들의 이탈이 늘어나는 것도 골치였다.
그렇게 '애플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갑작스런 자동차 사업 추진에 당시 애플 임원들 사이에선 "삼성과 GM 중 어느 쪽과 경쟁해야 하나"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갔다. 애플은 투자비 100억달러(약 13조원) 이상을 쓰고도 세상이 기대했던 '꿈의 자율주행차'를 내놓지 못했다. 결국 애플카 프로젝트는 10년 만인 올 2월 완전 무산됐다.
주력사업도 흔들리고 있다. 애플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이폰이 중국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고, 야심작인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프로'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유럽연합(EU)이 애플의 앱 다운로드와 인앱 결제 방식을 반독점 위반 혐의로 규정하고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한 것도 악재다. 월가에선 애플 '매도' 보고서가 등장했다. 주가가 계속 빠지면서 '공매도 놀이터'라는 굴욕적인 별명까지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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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랠리' 놓친 애플…"테슬라 잡으려다 MS에 뒤졌다"━
실제 애플은 이렇다 할 AI 사업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말 애플 주주총회 현장에선 AI 사업 부진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쿡 CEO가 "우리는 수년간 AI에 상당한 투자를 해왔고, 올 하반기 놀랄 만한 결과를 내놓겠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천하의 애플이 실체 없는 변명만 늘어놨다는 비판이 일었다.
보케캐피털파트너스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킴 포러스트는 "애플은 AI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무조건 증명해야 한다"며 "모두가 애플에 AI 스토리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시리가 아마존의 알렉사나 구글의 어시스턴트 등보다 많이 사용되는 것 같지만 정확성과 유용성 면에서 경쟁 모델보다 한참 뒤처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애플의 엄격한 데이터 프라이버시 정책이 시리를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됐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AI 조직을 키웠지만 시리를 뛰어 넘는 뾰족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애플이 지난달 애플카 프로젝트를 포기하면서 대부분 인적자원을 AI 부문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은 '챗GPT'가 촉발한 AI 경쟁에서 더 밀렸다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24를 통해 AI 스마트폰 시장을 선점한 것도 애플을 조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블룸버그통신·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 언론들은 "애플이 테슬라를 잡으려다 오픈AI와 손 잡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뒤처진 현실을 직시하고 자동차 사업을 접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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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돌린 중국, 뺨 때린 유럽…위기 극복할까━
시장의 평가도 냉담하다. 지난해 전 세계 기업 중 최초로 시가총액 3조달러(약 3960조원) 고지를 밟았던 애플의 현재 시장 가치는 2조6000억달러(약 3430조원)로 낮아졌다. 투자금이 AI 주도주로 몰리면서 2011년 이후 줄곧 놓치지 않았던 시총 1위 자리도 올 1월 MS에 빼았겼다. 바클레이즈·UBS 등 일부 투자은행(IB)들은 이미 애플에 대한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했다. 공매도도 쏟아지고 있다. 데이터분석회사 S3파트너스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달 뉴욕 증시에서 공매도 수익이 2번째로 높은 종목이었다.
반면 멜리우스리서치의 벤 레이츠 애널리스트는 "애플의 AI 전략은 아이폰 이후 가장 중요한 출시가 될 것"이라며 "이는 오는 2025년 애플의 슈퍼사이클을 만들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로젠블랫증권의 바튼 크로켓 선임 애널리스트는 "6월에 열리는 세계개발자회의(WWDC)는 애플을 파괴적인 혁신가 위치로 되돌려 놓을 역사적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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