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야, 애플에 무슨 문제 있어?"…"음, 무슨 말인지 이해 못했어요"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 2024.03.10 08:00

[MT리포트]위기의 애플① 혁신의 아이콘, '시리'에 갇히다

편집자주 | 지난해 전 세계 기업 중 최초로 시가총액 3조달러를 돌파하며 증시 역사를 새롭게 썼던 애플의 시대가 저무는 걸까. 2007년 출시한 아이폰으로 단숨에 스마트폰 업계 1위로 올라선 뒤 17년간 독점적 지위를 누렸지만, 인공지능(AI)이라는 시장의 큰 물결 속에서 애플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고, 투자자들은 초조해하고 있다. 애플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애플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AP=뉴시스
# 2008년 애플은 금융위기 여파로 막대한 손실을 내고 파산 위기에 몰린 제너럴모터스(GM) 인수를 진지하게 검토했다. 헐값에 미국 대표 자동차 회사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던 애플 임원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아이폰으로 집과 사무실, 자동차를 모두 원격 제어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던 애플 창업자이자 당시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GM 인수 프로젝트를 일찌감치 폐기해 버렸다.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고 '혁신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던 때였지만 자동차로의 사업확장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잡스의 의사 결정은 빨랐고, 애플은 잘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했다.

# 2014년 애플은 또 다시 자동차로 눈을 돌렸다. '애플워치'를 출시하고 다음 프로젝트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 때, 시장의 화두는 자율주행 기술이었다. 구글이 자율주행 테스트에 나섰고, 테슬라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었다. 잡스 사망 뒤 애플 CEO에 오른 팀 쿡은 자율주행 시장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빅테크 업계 연봉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애플 엔지니어들의 이탈이 늘어나는 것도 골치였다.

그렇게 '애플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갑작스런 자동차 사업 추진에 당시 애플 임원들 사이에선 "삼성과 GM 중 어느 쪽과 경쟁해야 하나"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갔다. 애플은 투자비 100억달러(약 13조원) 이상을 쓰고도 세상이 기대했던 '꿈의 자율주행차'를 내놓지 못했다. 결국 애플카 프로젝트는 10년 만인 올 2월 완전 무산됐다.

애플 팀 쿡 최고경영자/사진=블룸버그
글로벌 정보통신(IT) 시장 부동의 1위 기업 애플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잇따른다. 최근 빅테크 시장을 주도하는 인공지능(AI) 랠리에서 완전히 소외된 데다 10년간 공 들여온 자율주행 전기차 사업까지 접으면서 경영 판단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주력사업도 흔들리고 있다. 애플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이폰이 중국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고, 야심작인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프로'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유럽연합(EU)이 애플의 앱 다운로드와 인앱 결제 방식을 반독점 위반 혐의로 규정하고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한 것도 악재다. 월가에선 애플 '매도' 보고서가 등장했다. 주가가 계속 빠지면서 '공매도 놀이터'라는 굴욕적인 별명까지 얻었다.



'AI 랠리' 놓친 애플…"테슬라 잡으려다 MS에 뒤졌다"


애플은 2011년 AI 음성서비스 '시리'를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했지만 최근 경쟁 기업들에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FPBBNews=뉴스1
시장이 애플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 배경의 중심에는 AI 사업이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성장 테마가 AI로 바뀌면서 엔비디아·메타·마이크로소프트(MS) 등 경쟁사들의 랠리가 시작됐는데 애플은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애플카·비전프로 등 파생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느라 시기를 놓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애플은 이렇다 할 AI 사업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말 애플 주주총회 현장에선 AI 사업 부진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쿡 CEO가 "우리는 수년간 AI에 상당한 투자를 해왔고, 올 하반기 놀랄 만한 결과를 내놓겠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천하의 애플이 실체 없는 변명만 늘어놨다는 비판이 일었다.

보케캐피털파트너스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킴 포러스트는 "애플은 AI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무조건 증명해야 한다"며 "모두가 애플에 AI 스토리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아이폰4S에 음성 서비스인 '시리'를 탑재했을 때만 해도 애플은 AI 선구자로 통했다. 하지만 잡스가 시리를 세상에 소개한 다음날 사망하면서 애플 내부에서 시리 사업도 갈 길을 잃었다고 전·현직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아이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시리가 아마존의 알렉사나 구글의 어시스턴트 등보다 많이 사용되는 것 같지만 정확성과 유용성 면에서 경쟁 모델보다 한참 뒤처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애플의 엄격한 데이터 프라이버시 정책이 시리를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됐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AI 조직을 키웠지만 시리를 뛰어 넘는 뾰족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애플이 지난달 애플카 프로젝트를 포기하면서 대부분 인적자원을 AI 부문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은 '챗GPT'가 촉발한 AI 경쟁에서 더 밀렸다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24를 통해 AI 스마트폰 시장을 선점한 것도 애플을 조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블룸버그통신·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 언론들은 "애플이 테슬라를 잡으려다 오픈AI와 손 잡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뒤처진 현실을 직시하고 자동차 사업을 접었다"고 진단했다.

애플과 주요 자동차 기업의 시장 가치 및 수익률 비교


등 돌린 중국, 뺨 때린 유럽…위기 극복할까


애플의 돈줄인 아이폰 판매량도 꺾이는 추세다. 지난해 9월 출시된 최신작 아이폰15 시리즈의 첫 4개월 판매량은 아이폰14 대비 200만대 줄었다. 특히 애플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부진이 두드러졌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 들어 첫 6주간 중국 내 아이폰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감소했다. 중국 내 애플 점유율은 15.7%로 종전 2위에서 4위로 주저 앉았다.

중국 베이징 애플 매장 전경/AFPBBNews=뉴스1
유럽 당국이 반독점 위반 혐의로 애플에 18억4000만유로(약 2조66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한 것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가 됐다. 유럽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애플에 앱스토어 수수료를 낮추라는 압력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의 평가도 냉담하다. 지난해 전 세계 기업 중 최초로 시가총액 3조달러(약 3960조원) 고지를 밟았던 애플의 현재 시장 가치는 2조6000억달러(약 3430조원)로 낮아졌다. 투자금이 AI 주도주로 몰리면서 2011년 이후 줄곧 놓치지 않았던 시총 1위 자리도 올 1월 MS에 빼았겼다. 바클레이즈·UBS 등 일부 투자은행(IB)들은 이미 애플에 대한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했다. 공매도도 쏟아지고 있다. 데이터분석회사 S3파트너스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달 뉴욕 증시에서 공매도 수익이 2번째로 높은 종목이었다.

주요 빅테크 기업의 최근 1년 주가 흐름 비교
애플이 이번 위기를 극복할지를 놓고는 견해가 엇갈린다. 미라마캐피탈의 맥스 바서만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애플은 훌륭한 현금흐름과 대차대조표를 갖고 있으면서도 AI 시대 새로운 리더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웨이브캐피털매니지먼트의 리스 윌리엄스 최고 전략가도 "추진 동력이 부재한 애플이 생성형 AI 시장을 선점한 경쟁자들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고 봤다.

반면 멜리우스리서치의 벤 레이츠 애널리스트는 "애플의 AI 전략은 아이폰 이후 가장 중요한 출시가 될 것"이라며 "이는 오는 2025년 애플의 슈퍼사이클을 만들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로젠블랫증권의 바튼 크로켓 선임 애널리스트는 "6월에 열리는 세계개발자회의(WWDC)는 애플을 파괴적인 혁신가 위치로 되돌려 놓을 역사적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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