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1970년대 이후 금융시장의 역사를 보면 최초 금리인상 이후 3년 내에 금융위기가 터질 확률은 5분의1에 이른다. 그런데 신용 및 금융과열, 특히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이 높을 때 그 확률은 3분의1을 넘어선다. 물가불안이 심한 경우라면 4분의1 이상이다. 지금처럼 민간부채가 급증한 데다 인플레이션 여파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실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그 기저에는 보다 깊고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세계 중앙은행의 은행을 자임하는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인플레이션과 금융취약성의 누증을 두고 그동안 세계 경제의 성장을 견인한 통화 및 재정정책의 안정성이 시험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즉, 경제성장을 위해 총수요 안정에 초점을 맞춘 통화 및 재정정책의 재량적 활용이 이제 한계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처방은 총수요 변동에 대한 총공급의 순조로운 대응에 기반했다. 그러나 점차 구조적 차원의 공급제약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그 효력을 기약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코로나 이후 인플레이션 역시 주로 공급차질과 결부된 직접적 원인 못지않게 수요 안정화를 목적으로 한 대규모 통화 및 재정부양책의 자극에 의존한 면이 강하다. 이로 인해 자칫 그간의 저물가 체제가 고물가 체제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금과 비교되는 1970년대에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능동적 조합(policy mix)에 기반한 미세조정(fine-tuning)이 경제관리를 주도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오일쇼크 등의 공급충격에 휘둘린 '대(大)인플레이션'이었다.
반면 1980년대 이후에는 세계화에 힘입어 물가는 비교적 안정됐지만 금융자유화 과정에서 금융불안이 빈발한다. 결국 경제불균형의 증상이 인플레이션에서 금융취약성으로 옮겨간 셈이다. 또 당시는 재정건전화 이슈로 통화정책의 미세조정이 수요 안정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기저의 물가안정을 바탕으로 그리고 거듭되는 금융불안 탓에 정책 정상화는 늘 지연되고 정책여력만 부식되고 말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러한 금융불균형의 위험과 대가(장기정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를 거치며 금융불균형 외에도 1970년대식의 수급왜곡과 결부된 불균형(인플레이션)이 되살아나고 있다. BIS는 이런 이중적 도전에 맞서 이른바 '성장환영'(growth illusion)에 의존한 수요 안정화 위주의 접근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한다. 공급 유연성이 약화한 상황에서 관건은 역시 구조개혁이다. 시장실패 위험이 농후한 규제완화나 구조조정을 넘어 진정한 혁신을 위한 공급개혁이 필요한 때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