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투자자 자기책임원칙

머니투데이 이학렬 금융부장 | 2024.03.05 05:25
'1억원 만들기'가 유행일 때다. 기대에 부풀어 유행을 따라 펀드에 가입한 적이 있다. 1억원 만들기엔 실패했고 손실이 났다. 당시 지인은 "1억원 만들기 맞아. 하지만 3억원으로 1억원으로 만들어주는 거야"라고 했다. 우스개얘기지만 투자엔 손실도 감수해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주식 환불'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주식 처음 해본 사람입니다"라고 시작하고 "산 지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손실이 많이 나서 환불 받고 싶다"고 끝난다. 실제 주식을 처음 해본 투자자는 아닐 것이다. 충분히 알아보지 않고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고 '웃음'으로 손실을 이겨낸 '대범한' 투자자라고 믿어본다.

홍콩 H지수(HSCEI)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주가연계증권)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봤다. 올들어 홍콩 ELS 손실금액만 1조원이 넘었다. ELS 투자의 최소 투자금액이 주식이나 펀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기 때문에 절대적인 손실 규모가 크다. 손실률도 50% 넘는 등 작지 않다. 옵션매도 등이 포함돼 있으니 손실이 확정되면 기본 손실률 자체가 높다. 물론 손실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일정 정도의 옵션매도 프리미엄을 받는다.

금융당국은 1차 홍콩 ELS 주요 판매사 현장검사를 실시한 결과, 일부 금융사의 판매 한도관리 미흡과 계약서류 미보관 등 법규위반 소지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법규 위반사항을 확인하면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동시에 금융당국은 분쟁 민원이 접수됨에 따라 손실배상안도 마련중이다. 금융감독원은 조만간 분쟁조정위원회 안건으로 홍콩 ELS 배상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만나 "오는 9~10일이 넘어가기 전에 국민과 언론에 홍콩 ELS 배상안과 관련해 준비한 내용을 설명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금융당국은 꾸준히 금융사에 자율배상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 원장은 "책임을 인정, 원상회복 조치를 한다면 원론적으로 과징금 등 제재의 감경 요소로 삼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판매사가 불완전 판매했다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잘못된 판매로 투자자가 손실을 봤다면 배상해야 함은 당연하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에 따라 과징금 등도 내야 한다.


하지만 투자자 자기책임원칙을 벗어나는 배상을 하는 건 배임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투자자를 위해서라도 올바른 결정이 아니다. 대다수 투자자는 투자상품에 투자할 때 '수익률을 위해 손실을 감수하겠다'고 답했다. 실제 지난해 상환된 홍콩 ELS도 손실이 났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손실을 감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기보다는 '무조건' 손실을 배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홍콩 ELS 투자자에게 배상하는 돈은 선량한 다수에게서 나온다. 판매사가 은행이라면 대부분 이자장사를 해서 번 돈이다. 소상공인이 어렵게 장사해서 힘들게 낸 이자가 투자자 자기책임원칙을 지키지 않은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번듯한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해 서민들이 주택담보대출을 꼬박꼬박 갚은 돈이다.

투자할 줄 몰라서 적은 이자만 받고 은행에 돈을 맡기는 사람들도 억울하다. 손실을 메워준만큼 자신한테 돌아올 이자도 줄어든다. 손실을 우려해 투자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만 바보인가, 다음엔 나도 투자하고 손실나면 떼쓰지'라는 '도덕적 해이'를 키울 수 있다.

투자자 자기책임원칙에 어긋한 배상안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 노력을 허사로 만들 수도 있다. 압박에 못이겨 돈을 내준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에 누가 투자하겠는가.

소상공인, 서민, 선량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키우지 않는 건 순진해서가 아니라 금융회사와 금융당국, 투자자의 현명함과 도덕성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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