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르신,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머니투데이 박진영 서울시 디지털정책관 | 2024.03.04 05:30
/사진제공=서울시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에서 에이지테크(Age Tech·고령층을 위한 첨단기술) 관련 전시와 컨퍼런스가 화제가 됐다. 미국 고령자 지원단체인 AARP(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가 운영하는 전시장에선 고령층이 독립적이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다양한 기술이 소개돼 많은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런 기술만으로는 고령층이 디지털 전환시대에 적응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고령층이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기술에 접근하고 이용하는 데 있어 차별과 소외를 겪지 않도록 디지털 포용 정책과 사회적 배려 문화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디지털 포용'이란 모든 사람이 디지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사회의 포용성과 연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포용 정책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정부차원에서 디지털 포용 추진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는 모든 국민이 차별과 소외 없이 디지털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역량강화 교육을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 모든 세대가 디지털 혁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민간 부문의 협력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민간 기업들은 기술 혁신의 최전선에 있으며 그들의 전문성과 자원은 고령층이 이용하는 디지털 기술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업들은 사용하기 쉬운 무인단말기(키오스크) 등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를 개발해 고령층의 디지털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시민 사회 단체 및 교육기관들은 지역사회 내에서 디지털 교육과 멘토링 프로그램도 운영해 고령층이 디지털 세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민 개개인의 생활 속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세대가 디지털 기술을 자신감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배려문화를 조성하는 과제가 중요하다.


서울시에서는 작년부터 각 상점과 영화관 등에 널리 확산되고 있는 주문이나 결제를 위한 키오스크 설치 현장에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라는 안내문을 붙이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뒷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무인단말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문화를 만들고 우리 주변의 디지털 소외 계층을 배려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실행 중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우리는 누구나 디지털 약자가 될 수 있다. 시민 모두가 디지털 세상에서 소외되지 않고 그 혜택을 고르게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조금씩 기다려주고 함께 하려고 한다면 따뜻한 디지털 시대가 성큼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식당이나 카페 무인단말기 앞에 서 계시는 어르신을 만나게 된다면, 먼저 이 말 한마디 건네면 어떨까?

"어르신,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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