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에 못 박는 꼴"…홍콩 경제도 흔든 보안법에 '+α'라니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 2024.03.03 09:00

[MT리포트]갈림길에 선 홍콩③ 홍콩의 중국화 앞당길 '홍콩판 국가보안법' 기본법 23조

편집자주 | 빠르게 중국화 하는 홍콩의 모습은 자유가 사라진 시장경제가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글로벌 경제가 블록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산업과 금융 양측면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해야 할 한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아시아의 용' 홍콩은 왜 '아시아의 금융허브 유적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됐을까. 홍콩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홍콩 야당인 사회민주당(LSD) 인사들이 정부 청사 밖에서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이례적인 공개 시위를 벌였다. 2024.02.27. /AFPBBNews=뉴스1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통치 원칙은 영안실로 보내졌다."(홍콩 민주활동가 쿠씨이우)
"제출된 의견 대부분이 보안법을 빨리 시행하자는 내용이다."(존 리 홍콩 행정장관)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30일간의 협의 기간을 마쳤다. 홍콩 정부는 최종 법안 통과 시한을 밝히진 않았으나 '홍콩 기본법 제 23조 입법'에 대해 의견 수렴 절차를 끝내고 연내 조속히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협의 기간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28일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23조의 시행에 반대 의견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홍콩 안팎의 시선엔 우려가 크다. 중국 본토에서 만들어져 2020년 6월 말 시행된 '홍콩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이후 가뜩이나 빠르게 중국화하는 홍콩에 "쐐기를 박는 조치"라는 해석이다.

일명 23조로 불리는 홍콩판 국가보안법은 홍콩 내 반(反)정부 활동을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2020년 홍콩보안법으로는 다 단속하지 못하는 반정부 행위 일체를 뿌리 뽑기 위한 보완적 성격이다. 이 때문에 기존 홍콩보안법이 규정한 국가분열죄, 정권전복죄에 대해서는 따로 새로운 내용을 담지 않았다. 대신 반역, 선동, 국가기밀 절도, 간첩 행위 등과 관련해 기존의 법률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죄목을 신설해 최대 30년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지난해 12월 18일(현지시각) 홍콩에서 반중매체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의 국가보안법 재판이 열리면서 한 경찰관이 라이가 수감됐던 라이치콕 구치소 주변의 기자들을 점검하고 있다. 지미 라이 재판은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홍콩 언론인 재판 중 가장 주목받는 사건이다. /AP=뉴시스
중국은 2019년 민주화 시위가 수개월간 이어지자 정치적 안정을 되찾기 위한 방편으로 홍콩에서 홍콩국가보안법을 시행했다. 이를 통해 본토의 국가 보안 요원이 홍콩에 주재할 수 있게 됐고 용의자를 집권공산당이 통제하는 본토에서 재판받게 할 근거 조항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법은 외국 세력과의 공모 같은 일부 범죄만 다뤘다. 이 때문에 홍콩 보안책임자인 크리스 탕을 비롯 고위 관리들은 스파이 활동과 외국요원의 홍콩 내 활동에 대처하기 위해 홍콩 현지 추가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외국은행, 헤지펀드, 민간 연구기관을 포함한 기업들과 외교 및 학계는 기본법 23조 법안의 진행 상황을 주시한다. 중국 본토처럼 인터넷에 대한 통제로 이어지거나 데이터 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짙다. 실제 제23조 협의 문서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기 위해 컴퓨터나 전자 시스템을 불법 사용하는 것을 새로운 안보방해 범죄로 명시했다. 홍콩의 기업과 학계에서도 중국의 정치, 경제, 군사 연구와 중국 본토 개인 및 기업에 대한 실사 조사가 자칫 '국가 기밀'로 폭넓게 간주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조지타운대 토머스 켈로그 교수는 블룸버그에 "해당 법은 홍콩 비즈니스 커뮤니티에서 여러 불확실성을 만들어낸다"며 "해외단체와의 접촉에 대한 제한은 상공회의소, 싱크탱크, 경제연구소 등이 자유롭게 대화할 여지를 좁혀 비즈니스 허브로서의 홍콩의 명성을 해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리엔트 캐피털 리서치의 앤드루 콜리어 이사 역시 "홍콩판 국가보안법은 새로운 우려"라며 "이는 관에 또 하나의 못을 박는 것으로만 보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홍콩 민주화 운동가 리키 오가 지난해 11월 29일 민주진영 인사 47명에 대한 국가보안법 관련 재판의 최종 변론이 시작된 구룡 치안법원에 도착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도 "홍콩은 2020년 6월 중국이 제정한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이래 인권에서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한 순간에 직면해있다"며 "홍콩판 국가보안법의 입법은 홍콩에서 탄압을 더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앞서 2021년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이 시행되자 당국이 해당 법을 활동가, 정치인, 언론인, 시민사회단체 탄압에 이용한다며 홍콩에서 철수한 바 있다.

야당 인사들은 정부청사 밖에서 반대 시위에 나섰다. 사회민주당(LSD)의 유와이판은 "(존 리) 장관이 왜 반대파의 우려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많은 홍콩인들이 새 국가보안법에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홍콩 최대 변호사 단체 홍콩법률협회도 홍콩판 국가보안법에 따라 국가 기밀 범죄로 체포되는 이들에 대해 공익 변호를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홍콩 언론인협회는 법안 제정 시 국가 기밀의 정의에 대해 명확한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콩 당국은 2003년에도 기본법 23조를 제정하려 했으나 당시엔 약 50만명이 평화 시위를 벌인 끝에 보류된 바 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의 홍콩은 상황이 다르다.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3조 법안은 공개 열람과 일부 토론을 거쳐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이후 홍콩의 선거 제도가 변경되면서 이른바 '애국자'로 분류되는 친체제 인사들이 홍콩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12월 10일 치러진 홍콩 구의원 선거는 중국이 홍콩 선거제도를 개편한 후 처음 치러진 구의원 선거로, 친중 진영 후보만 출마해 역대 최저인 27.54%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지난 2014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마련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이 금융지구인 센트럴로 향하는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홍콩 당시 시민들은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도심점거 시위에 나섰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현재 중국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 과거와 같은 대규모 민주화 시위는 요원해졌다./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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