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이제는 용산이다…"이런 건 처음봐" 집시 1번지 비명

머니투데이 이강준 기자, 김지은 기자, 김지성 기자 | 2024.02.29 08:30

[MT리포트]집시폭탄(상)

편집자주 | 용산 시대에 살지만 법은 청와대 시절에 멈췄다. 대통령실 근처로 각종 집회·시위가 몰리고 전직 대통령 사저를 겨냥한 소음 테러도 극심하다. 6월부터는 대통령 사저 주변 또한 시위대에 사실상 무장해제가 된다. 신속한 보완 입법이 필요하지만 정치권은 진영 논리에 갇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집시 1번지 용산' 시대의 과제를 짚어봤다.



용산으로 우르르…"집회·시위 폭증" 집시 1번지 됐다




서울 경찰서별 집회 신고 현황/ 그래픽=이지혜
#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최근 의대 증원 반대 피켓을 내걸며 세 차례 집회를 모두 용산구 전쟁기념관 인근에서 개최했다. 2020년 같은 내용으로 궐기대회와 집회가 열렸지만 장소는 모두 광화문 인근이었다. 4년새 집회 장소가 바뀐 것은 대통령 집무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집회·시위(집시)를 보려면 고개를 들어 용산을 보면 된다. '집시 1번지'란 수식어는 이제 서울 종로에서 용산으로 넘어갔다. '시위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 용산 대통령실 앞 이태원로는 필수코스가 됐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가장 많은 집시 신고가 접수된 곳은 용산구인 것으로 확인됐다. 모두 6148건으로 '구(舊) 집시 1번지'였던 종로구(4167 건)를 앞섰다. 대법원·대검찰청 등 법조 단지가 있는 서울 서초구(3233건)보다도 2배 가까이 많았다.

용산에서는 하루에 집회·시위가 16.8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용산과 종로, 서초에 이어 경찰서별로 △남대문 3016건 △영등포 2385건 △강남 1369건 △마포 1290건 △성동 1113건 순으로 지난해 집회·시위가 열렸다.

◆ 집시 2516→3407→6148건 폭증한 용산, 종로까지 앞서…주민들 '소음 스트레스' 호소

서울 용산구 집회 신고 현황 / 그래픽=조수아
용산의 집회·시위는 소통을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취임과 동시에 집무실을 옮기면서부터 크게 늘었다. 용산 집시 신고 건수는 2021년 2516건으로 종로(4666건)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이듬해 3407건으로 35.4% 급증했다. 지난해엔 80.4% 증가했다.

종로가 집시 신고건수 1위 자리를 내준 건 작년이 처음이다. 지난해 용산이 80.4% 늘어나는 기간 종로는 오히려 15.6% 줄었다. 종로의 시위 수요가 용산으로 이전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과거 청와대 인근에서는 집회·시위를 여는 게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대통령실 지척에서도 시위와 행진을 벌일 수 있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제11조 3호에는 대통령 관저 경계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에선 옥외집회·시위를 못하도록 명시됐다. 대통령의 원활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대통령의 헌법적 기능 보호를 위해서다.

청와대 시절에는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이 함께 있던 인근에 집회·시위를 여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이 관저와 분리되자 집시법의 허점이 생겼다. 대통령 관저는 집무실과 다르다는 법원 판단에 따라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집회·시위를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 '현직 대통령' 집무실+'전직 대통령' 사저, 집시 금지 개정안…'4월 총선' 앞둔 여야 나몰라라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전국 16개 시·도 의사들이 이달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해 마무리 집회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
무분별한 집회·시위와 이에 따른 시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정치권이 나서야 하지만 여야 대치 때문에 입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022년 12월 100m 인근 집회·시위가 불가능한 장소에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를 추가하는 집시법 11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야당에서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에서 벌어지는 집회로 홍역을 치르는 와중에 개정안 논의는 순조로운 듯 보였다. 하지만 여야 대치가 장기화하면서 이후 개정 논의는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5월말까지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통령 집무실이 아닌 한남동 관저 인근에서도 집회가 자유로워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헌법재판소는 2022년12월 집회·시위를 금지한 집시법 11조 제3호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에 대해 예외조항 없이 모든 집시를 금지해선 안 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대안법을 올해 5월31일까지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으면 집시법 제11조 제3호의 법 효력은 사라지게 된다.

이에 국회에는 일정 요건을 갖출 경우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도 시위를 허용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현재 행안위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법 개정이 완료되지 않을 경우 6월1일부터는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집회·시위를 제한할 근거가 사라진다.



골목마다 소변·담배꽁초…용산 주민들 "집회, 이 악물고 참는다"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대한민국 인권후진국" "대한민국 자살나라 세계 1위" 등의 현수막은 물론 주요 정부 인사들의 눈과 얼굴이 훼손된 사진들이 즐비했다./사진=김지은 기자
"용산에 50년 살았는데 전쟁기념관 앞이 이런 건 처음 봐요."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이곳 근처에서 50년 넘게 살았다는 김모씨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추모의 공간이었던 전쟁기념관 앞에는 "대한민국 인권후진국" "대한민국 자살나라 세계 1위" 등의 현수막은 물론 주요 정부 인사들의 눈과 얼굴이 훼손된 사진들이 즐비했다.

김씨는 "원래 엄숙하고 조용한 곳이었다"며 "지금은 매일 같이 집회·시위를 하니까 시끄럽고 더러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들 볼까봐 창피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날 전쟁기념관 앞은 대통령 집무실 건너편에 위치해 일명 '집시 명당'으로 손꼽힌다.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바리게이트와 함께 '전쟁기념관 경내에서의 집회 시위는 불법'이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 집회·시위가 경쟁적으로 생겨나면서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민들은 평화롭고 조용하던 동네가 갑자기 "전쟁통이 됐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집회·시위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어 "참고 또 참는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용산경찰서 집회 신고 건수는 6148건으로 31개 경찰서 중 가장 높은 신고 건수를 기록했다. 2021년(2516건) 대비 144.4% 폭증했다.

집회·시위는 대체로 삼각지역 1, 2, 10번 출구를 비롯해 전쟁기념관 근처에서 열린다. 1인 시위부터 민주노총 집회, 보수단체 집회, 의대 증원 반대 집회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날도 4개의 각기 다른 단체가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과 시위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한 쪽에선 추모제를 진행했고 다른 한 쪽에선 기자회견이 이뤄졌다. 반대편에선 5~6명이 조끼를 입고 모여 침묵 시위를 했다. 횡단보도 앞에는 한 여성이 확성기를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욕설 난무…용산 상인들 "이 악물고 참는다"

지난해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근처에서 대규모 집회 시위가 열렸을 때 모습. 경찰들이 시민들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집회·시위가 폭증하고 지역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이곳 상권은 직격탄을 맞았다. 삼각지역 근처 상인들은 1년 동안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부동산, 옷가게 등 오랜 기간 이곳에서 장사를 한 사람들은 모두 문을 닫고 나갔다.

이미 세를 내고 들어온 사람들도 장사를 접을지 고민 중이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온갖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진보·보수 맞불 집회를 들으면 그 소음을 견딜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는 집회가 열리는 날은 장사도 포기한다고 했다. A씨는 "얼마나 욕을 해대는지 손님들도 시끄럽다고 나간다"며 "장사가 힘든 정도가 아니고 이러다 진짜 망할 정도"라고 말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씨 역시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 경찰이 통로를 아예 차단해서 손님이 들어올 수가 없다"며 "아무리 경찰에 신고를 해도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 악물고 참는다"고 말했다.

주차 공간도 사라졌다. 삼각지역 근처의 한 미용실은 평소 도로에 차들이 줄지어 서있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지만 집회 차량이 도로를 점령하면서 주차 공간을 확보할 수 없게 됐다. 집회·시위 소음까지 더해지면서 매출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 집회 참가자, '담배 꽁초' '배설물'…부동산 중개업자 "젊은 사람들 떠난다"

27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근처에는 아파트가 몰려있다. 인근 주택가에 사는 주민들은 매일 담배꽁초와 전쟁 중이다. /사진=김지은 기자, 독자제공
상인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불편함을 호소한다. 삼각지역 주변은 일반 주택가부터 고층 아파트까지 다양한 가구가 모여있다. 골목길에 사는 주민들은 담배꽁초, 배설물, 쓰레기와 전쟁 중이다. 고층 아파트의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이곳을 떠난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김모씨는 "여름에는 집회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골목마다 오줌도 싸고 담배꽁초도 버린다"며 "담배 냄새에 오줌 냄새까지 사방에 진동을 해서 매일 물청소하는 게 일이다"라고 말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는 "젊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다 내놨다"며 "아기를 재워야 하는데 밤마다 집회·시위를 하니까 힘들다고 하더라. 하루 종일 정치인 비난에 욕설까지 들으니까 아이들 교육 때문에 나간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文대통령 사저, 여전한 '관광버스·확성기' 시위…주민들 "자포자기"




경남 양산 집회·시위 신고 건수/그래픽=조수아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인근 집회·시위 신고 건수가 2년새 158%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귀향한지 2년이 돼 가지만 극심한 욕설과 소음을 동반하는 집시는 현재 진행형이다. 전현직 대통령 집무실과 자택 인근 집시로 인근 주민의 피해가 커지면서 대안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 '관광버스 대절' 집회 여전…"자포자기" 고개 떨구는 주민들

28일 경찰 등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의 집시가 해마다 증가한다. 지난해 양산 지역 집시 신고 건수는 754건으로 문 전 대통령 귀향 전인 2021년 292건 대비 158% 증가했다. 문 전 대통령이 귀향한 2022년 407건에 이어 증가세를 이어갔다.

일부 보수성향의 단체와 유튜버는 문 전 대통령 부부가 귀향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집시를 시작했다. 확성기와 대형 스피커, 시위 차량 등을 동원해 욕설 등 원색적인 표현을 쏟아냈다. 극우 성향으로 알려진 한 유튜버는 차량에 설치된 확성기로 "문재인 구속"을 외치며 욕설해 모욕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평산마을 주민들은 이제는 자포자기한 심정이다. 매일 같이 정치 유튜버 6명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자리를 꿰차고 있다. 주말에는 집회 단체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30~40명의 사람들이 몰려온다. 사저에서 약 100m 떨어진 집시 단골 장소가 경호구역에 포함되자 집시 주최자들은 마을 입구까지 밀려났지만 집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평산마을 이장을 지낸 A씨는 머니투데이와 한 전화통화에서 "지금도 경호구역 안으로 들어와 행패를 부리는 유튜버들이 있다"며 "벌써 2년째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음에 현수막까지 공해가 심각하고 주말에는 버스를 대절해 수십명이 오니 주차 문제까지 생긴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더 걱정이라고 했다. 집회 단체에 항의를 하고 싶어도 혹시나 폭력 행사가 일어날까봐 두렵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뾰족한 방법은 없다. 집회·시위는 허가가 아닌 신고 대상이기 때문이다.

A씨는 "1인 시위는 따로 신고를 안 해도 된다고 하니 혼자 무작정 와서 유튜브를 켜놓는 사람도 있다"며 "경찰에도 묻고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는 "보통 소음 신고가 들어오면 데시벨을 측정해서 일정 수준이 넘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며 "그런데 대부분 주최 측에서 데시벨만 살짝 낮춰서 집회를 이어간다. 사실상 시정 조치를 한 거라서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2022년 경남 양산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인근 도로에서 한 보수단체 회원이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 집시의 자유, 공공 이익 사이 절충점 찾아야

전문가들은 집시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 사이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현직 대통령 사저 등 인근 주민의 불편이 크다면 집시 소음, 시간 등을 어느 정도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직 대통령은 더 이상 공직자도 아닌데 집 앞 100m 안에서까지 집회하는 건 지나치다"며 "이 지역에도 주민들이 살고 있고 집회 소음이 너무 클 경우 공공 이익과 상충할 수 있다. 소음 규제는 어느 정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집시의 자유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기본권인 건 맞지만 무제한적인 것은 아니"라며 "법률상 기준과 한계를 넘어선다면 그에 대해 법적 제재가 가해지는 게 맞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논란이 심한 소음 문제와 관련해선 현행법상 느슨하게 돼 있는 측면이 있다"며 "현재도 수치로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좀 더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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