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같은 개 "살려줘 고마워요"…86세 할아버지가 또 울었다[체헐리즘 뒷이야기]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24.02.29 07:00

노년의 단짝 6살 진돗개 '행운이', 자궁축농증으로 응급 수술
기초생활수급자 할아버지 위한 행운이 수술비, 43분 만에 모금
"너무나 고맙고 미안해서…" 응원 메시지 읽으며 몇 번이나 울먹여
함께 울어준 관심…울어줄 보호자조차 없는 유기견들에게도 퍼지기를

편집자주 | 2018년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쓰고 있습니다. 해봐야 깊이 안다며, 동떨어진 마음을 잇겠다며 시작했지요. 격주 토요일 아침이면 오래 품은 기사들이 나갑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때 행복합니다. 여전한 숙제가 많으니, 차마 못 다한 뒷이야기를 가끔씩 풀려 합니다.

병원에서 검사할 때 덜덜 떨던 행운이를 품에 꼭 안아준 할아버지./사진=남형도 기자

밤 10시. 백발의 할아버지는 바깥이 컴컴해진 뒤에야 몸을 일으켰다. 동물병원 의자에 종일 쭉 앉아 있던 참이었다. 잘 보이지 않는 안쪽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행운아, 내일 또 올게."

아늑하고 따뜻한 음성. 그게 아녀도 가장 익숙하고 편안할 단짝의 목소리. 행운이는 병원 입원실 안에서 단박에 꼬릴 흔들었으리라. 서로 떨어져 본 일이 도무지 없었기에. 덜컹덜컹, 배에 붕대를 감은 개가 따라가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86세 할아버지와 7살 진돗개. 가족도 없이 홀로 살던 이는 어느 날 모란시장에 갔고, 운명처럼 하얀 개가 마음에 들어왔다. 상자 안에서 최고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 처음 만난 게 2016년 12월 29일이었다. 행복하게 잘 살라고 행운이라 이름 지어주었다.

행여나 겨울이라 추울까 싶었다. 점퍼 속에,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따스한 품에 넣었다. 덜덜 떨던 꼬물이는 따스함을 알려준 할아버지와 그리 둘도 없는 가족이 되었다.



복지관서 챙겨준 고기로는, 수술비를 낼 수 없어서


할아버지는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자라 한 달 37만원 받는 걸로 살았다. 해줄 수 있는 것 안에서는 마음을 담뿍 담아 행운이를 챙겨주었다. 복지관에서 고기가 나오는 날엔, 안 먹고 아껴 집에 와 행운이에게 주었다.

녀석은 단짝 마음을 잘 알았다.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졸졸 따랐다.

심장을 수술한 뒤 할아버지는 돌연 떠날 수 있단 걸 알게 됐다. 행운이 홀로 남겨질 게 걱정됐다. 입양 보내려 했으나 하룻밤을 새우고 도저히 안 되어 포기했다. 자기만 바라보는 마음이 염려됐다.
행운이와 할아버지를 위해, 매주 무상으로 훈련을 시켜주었던 이규상 트레이너./사진=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행운이와 할아버지를 응원하는 세 사람. 이규상 트레이너와 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나. 이리 셋이 뭉쳐 매주 훈련을 함께했다. 할아버지가 떠나도 다른 가족에게 갈 수 있도록 행운이의 민감도를 낮추는 거였다.
그러던 지난해 말, 행운이가 많이 아팠다. 자궁축농증이 오래돼 염증이 극심했다. 치료를 안 받으면 길어야 몇 달이라 했다. 문제는 수술비. 200만원 넘게 예상됐다. 할아버지는 그럴 여력이 안 되었다. 응원하던 우리가 연대했다. 수술비는 해결하겠다고, 수술부터 하자고 했다. 할아버지는 병원 앞에서 고맙고 죄송하다며 아이처럼 울었다.



43분 만에 모인 수술비…여전히 그런 세상이라고


수술 후 배에 붕대를 감은 행운이./사진=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지난해 12월 9일 아침. 눈이 일찍 떠졌다. 행운이 수술비 모금을 위한 기사가 나가던 날이었다. 댓글을 달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우주'인 작은 두 존재가 여기 있다고. 쓰러지거나 위태롭지 않도록 부디 동그랗게 지탱해달라고.
장신재 정글핌피 대표도 피드에 영상과 글을 함께 올렸다. 할아버지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챙겨주던 이였다.

"며칠 남지 않았다는 말에도 할아버지는 행운이 수술을 포기하셨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비용임을 아셨으니까요. '이렇게 아픈지도 모르고 내가 너무 미안해서, 아까 오는 길에 닭 한 마리라도 사와 삶아주려 하고 있었다'고요. 염치없지만 작은 마음 보태어주시면 잘 전달하겠습니다."
지난해 12월, 행운이 수술비를 모금하기 위해 댓글을 썼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기대보단 걱정이 실은 더 컸다. 경기도 안 좋은데, 얼굴도 모르는 어르신과 개를 선뜻 도와줄 이가 있을까 싶어서. 혹시 모금이 부족하면 그때 다시 고민하자고 생각했다.

글이 올라간 지 30분이 흘렀다. 장 대표가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다들 기다렸다는 듯 보내주고 계세요. 댓글 응원도 많고요. 금방 마감할 것 같습니다."
행운이와 할아버지를 응원하던 댓글들./사진=정글핌피 인스타그램 화면 캡쳐(@junglepimfy)
불과 43분 만에 수술비 모금이 끝났다. 댓글을 황급히 지웠다. 장 대표는 모금 계좌를 닫았다. 그런데도 추가로 더 들어왔다. 이 트레이너가 "다행입니다"라며 안도했다. 기사 댓글을 찬찬히 읽었다.

펑펑 흐르는 눈물에 글자 치는 것도 어렵단 사람, 차가워진 마음에 작은 불을 피웠단 사람, 할아버지와 행운이 여행비라도 주고 싶단 사람.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래도 다정함이 지탱하는 세상.



5일 만에 '퇴원'…할아버지 보며 절로 달려왔다


하루에 꼭 두 번씩, 밤늦게까지 행운이를 보러 갔었던 할아버지의 문자./사진=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빠르게 수술해야 했다. 병원에 와 두려워 덜덜 떨던 행운이가 스르르, 마취되었다. 6일 오후 4시 50분. 수술 과정에서 살펴본 행운이 자궁 염증은 생각보다 더 심했다. 벌겋게 퉁퉁 부어 있었다.

수술 당일, 할아버지는 병원에 하루 종일 머물러 있었다. 그날 저녁 6시쯤 수술이 잘 끝났다. 할아버지 문자가 장 대표에게 이리 왔다.


'정신이 들어서 내가 가니까 꼬리 흔들고 바로 쳐다봅니다. 이제 후유증 없이 잘 회복했으면 좋겠네요. 많이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행운이를 만나러 갔다. 단짝이 좋아하는 닭가슴살과 연어 간식을 손에 꼭 쥐고서. 두세 시간씩 있다가 온다고 했다.
11일 저녁은 행운이가 퇴원하는 날이었다. 5일을 입원 치료하며 염증과 빈혈 수치 모두 괜찮아졌다. 컨디션도 서서히 회복했다. 기운이 생기니 병원을 갑갑해했다. 장 대표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행운이 퇴원을 챙겨주러 갔다.

행운아, 할아버지가 불렀다. 행운이가 바라보았다. 그보다 먼저 세모난 두 귀가 젖혀졌다. 꼬리가 격하게 흔들렸다.

주저 없이 품으로 달려왔다. 망설이지 않아도 마냥 좋은, 세상에 하나뿐인 우주에게.



얇은 잠바 신경 쓰여서…할아버지에게도 새 패딩 선물


할아버지에게 모금액을 전달하는 과정도, 일일이 소통하며 물품을 구매하고 애써준 장신재 정글핌피, 핌피바이러스 대표./사진=핌피바이러스 계정 화면 캡쳐(@junglepimfy)
병원비는 수술비 등 다 해서 260만원이 나왔다. 총 모금액은 520만원. 병원비를 정산하고 남은 돈을 할아버지에게 드리려 했다.

할아버지는 극구 받지 않겠다고 사양했다. 기초생활수급비에 연금을 더하여 월 생활비 60만원. 모으진 못해도 우리끼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다시 건강해진 행운이가 할아버지를 보자 환해졌다. 늘 그랬듯 다가가 두 발로 섰고, 맘껏 꼬릴 흔들었다. 수술 받지 않으면, 짧으면 며칠에서 몇 달이라던 행운이가 이리 웃는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도왔기에 가능했던 일. 두 단짝의 삶을 이어가게 해준 건 여러분이다./사진=행운이와 할아버지 응원 모임에 있는 남형도 기자
장 대표와 이 트레이너와 의논했다. 단벌 신사인 할아버지가 한겨울에도 맨날 입는, 얇은 잠바가 신경쓰인단 얘기가 많았다. 두툼한 겨울 외투를 한 벌 사드리기로 했다. 행운이 겨울옷, 영양제 등도 샀다.
한겨울에도 맨날 얇은 잠바 두 벌만 돌아가며 입는 게 신경 쓰여서, 할아버지에게 검은색 롱패딩을 선물했다./사진=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남은 금액은 체크카드에 담아 할아버지에게 전했다. 장 대표가 하나하나 다 챙겼다. 사랑의전화복지재단에서도 앞으로 매달 20만원씩, 할아버지와 행운이를 위해 보태겠다고 했다. 해피엔딩. 정글핌피에 올라온 후기 영상을 보며 울었다는 이들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까만 새 롱패딩을 입고선 "부자 할아버지로 오해받겠다"며 웃었다. 장 대표가 인쇄해준 사람들의 응원 메시지도 찬찬히 하나씩 읽었다. 그러다 몇 번씩 목이 메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합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행운이와 함께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 기자의 말


할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남겨준 기프트카드.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사진=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쏟아지는 관심을 보며 따뜻했습니다. 장신재 정글핌피 대표님, 이규상 트레이너님께서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한편으로 저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행운이와 할아버지에게 애정이 쏟아진 것처럼, 다른 유기동물들에게도 그러했으면 좋겠다고요. 행운이는 울어줄 할아버지라도 있었지만, 버려진 많은 개와 고양이들은 그럴 이조차 없으니까요.
울어줄 단짝도 없는 수많은 유기동물들. 대부분 가족으로 '입양'해야 한단 생각에, 걱정과 부담이 있으나, 그 전 단계로 '임시보호'하는 방법도 있다. 급한 안락사를 막으면서, 자연스레 가족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귀한 일이다. 장신재 핌피바이러스 대표도 '임시보호'를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직 관심이 낮은 편이다./사진=핌피바이러스(@pimfyvirus)
모아진 이 관심이, 가족을 기다리는 유기동물에게도 자연스레 향했으면 좋겠습니다. 장신재 대표님이 만든 '핌피바이러스'도, 임시 보호를 잘 알리기 위해 생겼습니다. 공고 기한이 지나면 안락사되는 개들을 살릴 수 있고, 평생 가족을 찾아줄 수 있게 잠시 돌보는 귀한 일입니다. 장 대표님이 전하는 말입니다.

"임시보호는 충분한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유기동물의 절반이 목숨을 잃어야만 하는 잔혹한 현실 속에서, 임시보호는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에요. 물론 임보의 목표도 결국 입양이지만, 입양을 가려면 우선은 살아있는 게 먼저니까요.

임보를 한 번 시작한 대다수의 동물들은 시기만 다를 뿐 언젠가는 가족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구조와 입양, 그 중간을 이어주는 핵심적인 징검다리인 임시보호의 중요성을 더 많은 분들이 알아주시고, 함께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쓴 글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으시고 뜨겁게 마음 보태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필요한 글 부단히 잘 담겠습니다.

남형도 기자 올림.
행운이와 할아버지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동화 속 해피엔딩처럼 무탈하고 안녕한 날들만 이어지기를 바라며./사진=햇살이 들어오던 오후에,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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