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 변화는 당장 현장에서부터 감지된다. 글로벌 장비업체들이 시장 선도 업체인 SK하이닉스에 신물질과 장비 우선 평가를 요청하고 있다. 장비사들은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회사에 제품을 제공해 자사 레퍼런스에 활용한다. SK하이닉스의 한 반도체 엔지니어는 "투자액이 적더라도 (장비사들의) 대응이 빨라졌다"며 "대우 변화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뒤바뀐 상황은 점유율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을 SK하이닉스 53%로 추정했다. 삼성전자가 38%, 마이크론이 9%로 뒤를 이었다.
실적에서도 희비가 갈렸다. 지난해 4분기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3460억원을 내며 삼성전자보다 먼저 흑자전환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반도체는 2조18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다만 메모리반도체에 주력하는 SK하이닉스와 시스템LSI, 파운드리 사업부까지 갖춘 삼성전자 DS의 실적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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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대 HBM3E 개화…올해 '경쟁 2막' 시작━
SK하이닉스가 다음달부터 엔비디아에 8단·24GB(기가바이트) HBM3E(5세대)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2라운드 경쟁의 막이 올랐다. (본지 2월 21일자 '[단독]SK하이닉스, 3월 세계 최초 HBM3E 양산' 참조) 엔비디아의 최종 성능 평가 기준을 만족시키는 물량들은 지난 1월부터 양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27일 12단·36GB HBM3E 개발 성공 소식을 발표하며 맞불을 놨다. 마이크론은 26일(미국 현지시간) 8단·24GB HBM3E를 대량 양산시작했다고 밝혔다.
선택은 엔비디아에 달렸다. 엔비디아는 AI(인공지능) 개발 플랫폼 쿠다를 바탕으로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쿠다를 통해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칩 시장에서 90% 이상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한다. 메모리 기업들의 HBM 개발과 양산 소식 그 자체보다 엔비디아에 대한 공급이 더 주목받는 이유다.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는 것은 HBM 기술력 입증의 의미를 갖는 동시에 수익 창출과 연결된다. HBM3E는 엔비디아가 올해 출시 예정인 GPU(그래픽처리장치) H200, B100에 탑재된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현 상태에선 엔비디아의 GPU가 거의 유일한 AI 솔루션"이라며 "엔비디아 GPU에 탑재되는 HBM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라 다르지만 올해 HBM의 연간 성장률은 적게는 40%, 크게는 60% 이상일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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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속도·캐파 싸움 격화━
영원한 승자는 없다. 과거 D램은 양산형 제품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복잡한 설계 기술과 패키징을 요하는 HBM의 경우 고객 주문형 특성이 커 경쟁이 더욱 심해졌다. 엔비디아의 HBM 성능 검증은 반년에 걸쳐 진행될 정도로 꼼꼼하고 세밀하다. 뒤집어 얘기하면 제품 성능과 개발 속도에 따라 언제든 승자가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만큼 강력한 캐파(CAPA,생산능력)싸움도 치열하다. 업계는 올해 메모리 3사의 HBM 출하량이 수요의 절반에 불과할 것이라 본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SK하이닉스가 향후 메모리 시장을 지배할 HBM에서 앞서나가면서 (삼성전자와) 강력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됐다"면서도 "HBM이 패키징 기술 역시 굉장히 중요한만큼, 삼성전자가 그런 측면에선 조금 더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준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는 "SK하이닉스가 HBM을 먼저 시작한 것이 주효했다"며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도 빨리 캐치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HBM이란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성능·고용 제품이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 처리가 필요한 AI 시대 필수재로 여겨진다. 기존 제품 대비 제품의 영업이익률이 50%를 훌쩍 넘어서 수익성 확보에도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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