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당한 내 잘못이야? 사기 친 네 잘못이야!"

머니투데이 영화 '시민덕희' 박영주 감독  | 2024.02.29 04:00
박영주 영화 '시민덕희' 감독. /사진제공=쇼박스


2017년 2월21일 경기 화성시의 세탁소에서 '시민덕희'의 실화 주인공 김성자씨를 처음 만났다. 그는 보이스피싱으로 3200만원을 잃었다. 가해자에게 화가 많이 나 있거나 경찰에게 실망감을 가진 모습일 것이라 짐작했다. 실제로 만난 김씨는 분노보다 더 큰 자책감을 드러냈다. '내가 왜 그걸 바보같이 당했을까 싶어 너무 괴로웠다'고 했다. 스스로 생을 달리할 생각도 해봤다고 했다. 영화는 김씨를 만나 느낀 충격에서 출발했다. 그에게 "계속 싸우면 더 아프지 않나. 영화로 잘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보이스피싱이 정말 악질적인 범죄인 것은 단순히 돈을 빼앗아서가 아니다. 피해자에게 절망감을 주는 범죄라서 그렇다. 영화를 준비하며 피해자를 비롯해 수사과 경찰관 세 사람, 전직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취재했다. 가해자가 겨냥하는 대상이자 피해를 당하는 이들은 대체로 평범한 시민이었다. 돈이 급히 필요한데 사회적 안전망은 없고 대출은 되지 않는다. 김씨도 추락 사고를 당해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보이스피싱은 그런 사람에게 더 큰 절망을 맛보게 한다. 돈뿐 아니라 자존감을 잃고 가족과도 멀어진다.

반면에 가해자는 죄책감에서 쉽게 빠져나온다. 유선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다 보니 나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이 없다. 돈을 쉽게 벌어 쓸 생각만 한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로 의심된다는 제보를 받아 경찰이 조사해보면 특징이 있다고 한다. 갑자기 좋은 외제 차나 좋은 시계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물질 앞에서 타인은 철저히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다. 영화에서 총책(이무생)은 덕희(라미란)에게 붙잡힌 후 "겨우 3200만원 때문에 날 쫓아왔어? 남는 장사했잖아"라며 현금다발을 쥐여준다.

피해자가 돈을 쉽게 얻으려다 꼬임에 넘어갔다면 사기를 당해도 마땅하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절박한 상황에 부닥쳐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정신 안 차려서 당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범죄 수법이 얼마나 교묘한지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어리숙한 말투의 조직원이 전화하는 모습을 개그 소재로 사용하던 수년 전과 다르다. 전직 조직원 말을 들어보면 이들은 '사기 칠 궁리'만 하고 산다. 교도소에 가서도 머리를 맞대고 사기 기술을 연구해 더 진화한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영화 말미에서 덕희는 중국 칭다오 현지에서 직접 총책을 붙잡고 말한다. "이게 내 잘못이냐? 사기당한 내가 등신이야? 아니야. 내 잘못 아니고, 사기 친 네가 잘못한 거야." 피해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피해자는 더 당당해져도 된다. 영화에는 분명 판타지도 있다. 3200만원 소액 사건 수사에 미온적이었던 경찰이 뒤늦게라도 덕희에게 사과하고 덕희가 먼저 범인을 잡았을 때 고맙다고 인사하는 모습이다. 상처받은 피해자가 조금이라도 위로받기를 바랐다.

덕희를 돕던 친구 복림(엄혜란), 숙자(장윤주), 애림(안은진)만큼은 판타지가 아니었다. 김씨도 자신을 도와준 친구 덕에 힘든 시기를 버티고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대단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된다. 자기 존재로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도 피해자를 구할 수 있다. 의리로 뭉친 시민은 거대한 범죄 조직도 일망타진한다. 그게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시민의 힘이다.

영화 '시민덕희'(Citizen of a Kind)는 지난 1월24일 개봉했다. 2016년 경기 화성시의 세탁소 주인 김성자씨가 보이스피싱 총책 및 조직 전체를 붙잡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사진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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