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직장인, 한달만에 41억 빼앗겼다…교묘해진 그놈들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양윤우 기자 | 2024.02.22 05:00
#1. 부산에 거주하는 A씨는 지난해 구매대행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문자를 받고 일을 시작했다. 돈 버는 방법은 간단했다. 쇼핑몰 사이트에서 물품을 대신 구매해주면 물품대금에 10~20% 수익금까지 얹어 돌려주는 식이다. 대신 쇼핑몰 사이트에서 현금으로 포인트를 충전한 뒤 지정 물품을 구매해야 했다. 처음엔 소액의 물품을 구매하면 대금과 수익금까지 돌려줘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규모가 커져 수천만원을 충전했을 때 일이 터졌다. 갑자기 사이트 접속이 불가능해졌고 자신을 쇼핑몰 직원이라고 소개했던 B씨는 잠적했다.

#2. 경기 일산에 거주하는 C씨는 지난달 영화 설문조사를 하면 2만원을 준다는 문자를 받았다. '어떤 장르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간단히 답하자 2만원이 계좌로 입금됐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냐'는 문자에 C씨는 그렇다고 답했고 곧바로 텔레그램 방으로 초대됐다. C씨는 특정 사이트에서 영화 티켓을 예매하면 인센티브를 얹어 돌려준다고 소개받았고 속는 셈 치고 보낸 10만원은 13만원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점점 규모가 커져 C씨가 1000만원을 입금하자 상대는 자취를 감췄다.


보이스피싱 수법이 더 교묘해지고 있다. 과거엔 금융기관, 수사기관 직원을 사칭해 돈을 뜯어냈다면 최근에는 쉽고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고 속여 사람들의 돈을 뜯어낸다. 처음엔 약속한 대로 돈을 주면서 신뢰를 쌓다가 액수를 키워 가로챈 뒤 잠적하는 수법이다.

주식투자로 손실을 본 피해자들에게 손실보상팀을 사칭해 '예치금을 입금하면 투자손실금을 가상화폐로 환급해주겠다'고 속이는 사례도 있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다.

청첩장, 택배 배송조회, 카드결제 승인 문자 등 악성앱 설치링크가 포함된 메시지를 보내거나 공공자전거 따릉이에 부착된 QR코드 위에 악성 QR을 덧대 QR을 찍으면 악성 앱이 설치되도록 하는 유형도 보고된다. 이렇게 설치된 악성앱과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에 속아 41억원의 피해를 본 이도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D씨의 사례다.

D씨는 최근 낯선 번호로 자신을 '서울중앙지검 E 검사'라고 소개하는 전화를 받았다. E 검사를 사칭한 사람은 D씨 명의의 통장이 범죄에 이용됐다며 카카오톡으로 고소장 사진과 공무원증으로 보내고 잘 협조하면 약식조사로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D씨가 협조하겠다고 하자 보안프로그램을 깔아야 한다는 문자가 왔고 이를 누르자 악성앱이 깔렸다. 악성앱은 범죄조직이 D씨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와 문자메시지를 볼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강수강발(강제수신·강제발신)'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D씨가 보이스피싱을 의심해 금감원에 전화를 걸어도 중간에 전화를 가로채 금감원 직원을 사칭했다. D씨는 '대출을 해서 출금해야 명의가 범행에 연루됐는지 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한달 동안 41억원의 피해를 봤다.

보이스피싱 범죄집단이 검사를 사칭하는 방법도 D씨의 사례에서 보듯 더 촘촘해졌다. 과거에는 전화로 '~청 검사'라고 사칭하는 수준이었다면 요즘엔 위조한 검찰청 명의의 서류나 검사 신분증, 검찰 압수박스 사진 등을 보내 속인다. 법복을 입고 영상통화를 하면서 연기하는 경우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확인되지 않은 상대가 어떤 명목이든 돈을 요구하면 전화를 끊은 뒤 꼼꼼하게 진위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확인되지 않은 상대가 보내는 링크를 함부로 설치하면 안 되고 혹여 악성앱을 설치했다면 '강수강발' 기능을 이용해 조직원이 전화를 넘겨받을 수 있는 만큼 다른 통신수단을 이용해 진위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능화한 보이스피싱 범죄에 범정부 역량을 동원해 대응하면서 피해액과 발생 건수는 그나마 감소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액은 2017년 2470억원에서 2021년 7744억원으로 늘었다가 2022년 7월 서울동부지검에 '보이스피싱범죄 정부 합동수사단'이 출범한 뒤 2022년 5438억원, 지난해에는 4472억원으로 줄었다.

발생건수도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 동안 3만 수준을 보이다가 2022년 2만1832건, 지난해 1만8902건으로 감소했다.

수사 일선에선 점조직으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특성 탓에 조직원을 특정하기 어렵고 직접 범행을 저지르는 해외 콜센터 조직을 검거하기 위한 국제공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수민 보이스피싱범죄 합수단장은 머니투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콜센터 조직이 해외에 있긴 하지만 결국 국내 피해자들에게 연락하고 피해금원을 편취하기 위해 국내에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 조직과 연계하게 된다"며 "국내 조직을 수사하면서 특정한 해외 조직원들에 대해 체포영장 발부, 인터폴 수배, 여권말소 조치를 병행하면서 검거 가능성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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