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대신 '밥퍼' 봉사한 이 부부…기부한 돈도 1억

머니투데이 김미루 기자 | 2024.02.21 06:01
20일 낮 12시30분 서울 동대문구 다일공동체 밥퍼나눔운동본부. 김종운씨(53)·이명신씨(49) 부부와 두 아들을 밥퍼 건물 입구에서 만났다. /사진=김미루 기자
20일 낮 12시30분 서울 동대문구 다일공동체 밥퍼나눔운동본부 건물 입구. 이명신씨(49)가 "이거 맛있어요"라며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어르신의 손에 말린 사과 두 봉지를 쥐여줬다. 포장지 문구가 모두 영어로 적힌 탓에 어르신이 "이게 뭐예요?"라고 묻자 이씨의 남편 김종운씨(53)도 나서서 "사과 말린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아들 김세이씨(20)와 김태희군(17)도 능숙한 솜씨로 간식을 전달했다. 2004년 2월14일 결혼한 부부는 신혼여행 분으로 나온 휴가 5일을 밥퍼에서 봉사하며 보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출산 후에도 매년 이맘때쯤이면 이곳을 찾았다. 큰아들의 돌잔치도 밥퍼에서 열었다.

부부는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이씨는 머리 긴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당시 김씨는 어깨까지 오는 기장의 파마머리였다. 김씨의 머리는 사귄 지 100일째 턱선까지 짧아졌고 8개월째 스포츠 컷으로 바뀌었다. 스포츠 컷 머리를 했을 무렵 이들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남편 김씨가 결혼관을 설명하는 데는 꼬박 3박4일이 걸렸다. 신혼여행 대신 봉사하는 시간을 갖자는 계획이 그 일부였다.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인이 아닌 사람들과도 소통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이씨도 그 이유에 동감했다. 대신 주말을 포함해 3일은 제주도에 다녀오기로 했다.
약 20년 전 부부가 큰아들 김세이씨(20)를 낳고 봉사에 와서 최일도 목사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제공=다일공동체
20년간 봉사를 계획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매년 2월14일이 돌아오는 주말이 되면 밥퍼로 발길이 향했다. 대기업에서 연구 관련 직무를 맡은 김씨를 따라 온가족이 중국 옌타이에 머무를 때도 봉사는 멈추지 않았다. 기부한 돈도 1억원에 달한다.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부모를 따랐다. 태희군은 전날 다른 일정으로 밥퍼에 오지 않은 형 세이씨에게 "난 어제 솥뚜껑, 밥솥 설거지도 했어"라고 으스대며 말했다. 군 입대를 앞둔 세이씨는 "군 휴가도 봉사 일정 맞춰 나올 수 있으면 오고 싶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 자리를 비운 셋째 딸은 먼 미래에 혼자라도 오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엄마에게 한다고 했다.


이씨는 "밥퍼에는 은퇴하고도 10년간 봉사하는 분, 방학이라고 오전 7시부터 나와 배식을 준비하는 중3 친구도 있다"며 "우리가 주목받는 게 조금 민망하다"고 했다.

이어 "저희는 알려지지 않아도, 잊혀도 상관없다. 그냥 왔다가 가는 사람일 뿐"이라며 "밥퍼는 계속 이 자리에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밥퍼는 현재 법적 소송에 휘말려 위기에 놓인 상태다. 서울시가 2022년 최일도 목사를 건축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데 이어 최근 동대문구가 밥퍼 가건물이 불법 증축 건물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밥퍼 측은 동대문구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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