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트먼은 최근 다시 세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가 자사 AI 개발에 사용할 반도체 직접 조달을 위해 최대 7조달러(약 9300조원) 규모 투자금을 유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6000억달러, 추정치)의 12배에 달하는 돈을 투입해 자체 AI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올트먼이 내놓은 구상의 실현 가능성을 제대로 따져볼 틈도 없이 이번에는 일본발 뉴스가 날아들었다. 블룸버그는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AI 반도체 회사 육성을 위해 1000억달러(약 133조5000억원) 규모 기금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프트뱅크는 반도체 설계업체 ARM의 지분을 90% 갖고 있는데, 이번 기금 조성은 ARM의 경쟁사 엔비디아에 대적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손정의와 올트먼의 행보에서 표면적으로 읽히는 현상은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서 '기업 간 경쟁' 심화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 더 넓히면 경쟁의 주체는 결국 '국가'로 확장된다.
올트먼은 이번 프로젝트와 관련해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과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올트먼의 계획이 '미국의 프로젝트'로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손정의는 이번 프로젝트에 일본 건국 신화에 나오는 창조의 신 '이자나기(Izanagi)'라는 '일본스러운' 명칭을 붙였다. 일각에서 분석하듯 이자나기 스펠링에 일반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이니셜 AGI가 포함된 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정부가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해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은 어떤 상황일까. 기업의 반도체 시설·R&D(연구개발) 투자에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일부 대책을 추진 중이지만 '총력 지원'에는 한참 못 미친다. 시장은 삼성전자가 올트먼이나 손정의처럼 과감한 투자에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사법 리스크와 각종 규제가 앞길을 막고 있다. 기업 혼자서는 어려운 도전적인 AI 반도체 기술 개발이 필요하지만 올해 정부의 R&D 예산은 지난해보다 4조6000억원 깎인 26조5000억원에 머물렀다.
정부는 반도체 기업 투자를 방해하는 요소를 발굴·해소하고, 민관 협력 대형 R&D를 추진해 선도 기술 개발을 도와야 한다. 나아가 고질적인 반도체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인재 양성 지원 정책도 확대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 자체의 치열한 노력과 함께 정책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잡으려면 보조금과 같은 과감한 정부의 뒷받침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