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지막 희망이 꺼진 것 같았다."
러시아 야권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리를 추모하는 러시아인들이 서울 중구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 모였다. 나발리는 시베리아 지역의 한 교도소에서 숨진 것으로 지난 16일(현지시각) 언론에 보도됐으며 러시아 당국은 산책 후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고만 밝혔을 뿐 현재까지 정확한 사망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러시아인들은 자국 대사관 앞에서 주기적으로 반전시위를 열고 있다. 평소 많아야 40~50명이 모이는데, 나발리 사망이 전해진 직후인 지난 17일에는 반전 집회 개최 후 가장 많은 60여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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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선 나발니 추모하면 체포·구금…"죄책감에 나왔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체류 중인 러시아인은 2만1557명. 하지만 이들이 푸틴의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러시아 인권단체 OVD-인포는 러시아 32개 도시의 나발니 추모 장소 근처에서 추모객 400명 이상이 경찰에 끌려가 구금됐다고 주장했다. 앞서 러시아 모스크바 검찰청은 미허가 시위에 합류하거나 합류를 촉구하면 최고 징역 15년형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 대사관 앞에 모인 이들 중 상당수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했다. 이들은 집회 정보를 보안성이 높은 메신저 텔레그램을 사용해 공유한다. 가족이 노출될 수 있는 정식이름 대신 서로를 애칭으로 부른다. 참여자 중 다수는 정치적 이유로 한국에 망명을 신청하거나 한국인과 결혼해 귀화를 준비 중이다. 귀국해야 하는 러시아 국적자들은 참석하기 공개적인 '푸틴 반대'집회에 참여하기 어려운 탓이다.
집회에 참여한 미하일로바 아나스타시야씨(28·여)는 "'우리는 무섭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러시아에서는 집회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한국인과 다른 외국인들이 푸틴에 반대하는 러시아인이 있다는 걸 볼 수 있게 하려고 집회에 나섰다"고 했다.
블라디미르씨(25 ·남)는 "러시아에 있는 모든 가족이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한다"며 "가족들과 관계를 깰 수 없어서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내가 나발니 추모집회에 나온 것도 가족들은 모른다"고 했다.
니콜라이씨(39·남)는 "이번 나발니 추모 집회는 계획된 게 아니라 한명씩 참여를 했다"며 "우리는 나발니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날 집회를 마치고 러시아 대사관 앞에 나발니 추모공간을 마렸했다. 이후 대사관 앞에 허가 받지 않고 추모공간을 조성해선 안 된다는 경찰의 안내에 따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앞의 푸시킨 동상으로 추모공간을 옮겼다.
동상에는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적혀 있다. 동상 받침대에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라는 시구가 적힌 아래 나발니의 사진과 조화를 가져다 놨다. 비에 젖지 않도록 우산을 씌워 놓은 참가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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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니 죽음은 음모론"…푸틴 옹호하는 러시아인들도━
이어 "나발니는 해외의 도움을 받아 푸틴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을 뿐 애국자가 아니다"라며 "국내 체류 러시아인들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나발니를 추모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있는 러시아인 중 몇명이나 푸틴을 지지하고 또는 푸탄에 반대하면서 나발니를 추모하는지 정확한 비율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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