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눈 되려다 '사지마비'…2만원짜리 보험도 없었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24.02.15 07:00

시각장애인 국가대표 김정빈 선수(33) 눈 되어 달려준 파트너 조선씨(50), 일본 경기 함께 출전했다 큰 부상
시속 80㎞까지 달리는 경기인데 보험도 없이 출전, 가입 안 된 것도 일본서 경기 전날 알아
수술비 4000만원 고스란히 자비로 부담할판, 연맹은 "성금 모아 2000만원 전달, 내부 논의 중"

시각장애인이 자전거를 탄다. 나아가 경기까지 한다. 언뜻 듣기엔 조금 의아할 수 있다. 빠른 속도에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게 가능한 건 혼자가 아니어서다. 둘이 함께 탄다. 뒷자리엔 시각장애인이, 앞자리엔 비장애인인 파트너가. 파트너는 시각장애인의 '눈'이 된다. 이를 2인용 자전거, '탠덤사이클'이라 한다. 파트너를 '파일럿'이라 부른다.

사고가 일어난 건 지난해 12월 3일, 일본 도쿄 대회에서였다.

두 사람이 나란히 자전거에 올라 달리고 있었다. 뒤에는 시각장애인이자, 2018년부터 탠덤사이클 국가대표인 김정빈 선수(33)가 탔다. 그는 항저우 파라게임(장애인아시안게임) 3관왕이기도 하다. 정빈씨의 눈이 돼 호흡을 맞추던 건 파일럿 조선 선수(50)였다. 선씨가 앞에서 경기를 이끌고 있었다. 둘은 지난해 3월부터 합숙하며 훈련한, 깊은 신뢰로 맺어진 사이였다.

첫 바퀴를 돌 때였다. 흙으로 된 구간에 들어갔을 때, 돌연 뒷바퀴에서 '빵' 하는 소리가 났다. 타이어가 터진 거였다.

당시 선씨가 확인한 속도는 '시속 55㎞'. 브레이크 조작을 하려 했으나 안 됐다. 넘어지려 했던 방향의 반대쪽으로 자전거가 전복됐다. 우당탕탕탕, 쫙 미끄러지며 날아갔다. 화단에 쿵 부딪힌 뒤에야 멈춰 섰다.
정빈씨가 고통에 소릴 지르고 있었다. 선씨는 전기에 뭔가 쫙 감전된 느낌이었다. 그가 먼저 물었다.

"정빈아, 괜찮아?"

정빈씨가 진정한 뒤 파트너에게 물었다.

"선이형, 형은 괜찮으세요?"

선씨는 자신을 확인했다. 어쩐 일인지 아프지 않았다. 대신 움직일 수도 없었다.

가슴 아래쪽으로는 아무런 감각이, 아니 아예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었기에.



시각장애인 눈 되려다 '사지마비'…2만원짜리 보험도 안 들어준 연맹



시간을 잠시 거슬러, 경기 하루 전날이었다. 선씨가 감독에게 들은 얘기가 이랬다.

"'보험 안 들어 있으니까 그냥 살살 타라', 이런 느낌의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처음엔 어이가 없었어요. 이게 뭐지, 장난하는 건가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정말 보험이 없더라고요."

경기 코앞에서야 알게 된 이야기. 국가대표인 정빈 선수도 전해 듣고 순간 멍해졌다. 빠르면 시속 80㎞ 이상 달리는 탠덤사이클 경기인데 보험을 안 들었다고. 정빈씨가 말했다.

"보험 없이 경기에 출전한 건 처음이었어요. 그럼, 진작 이야기해야 하잖아요. 미리 들었다면 안 간다고 하거나, 제 돈을 들여서라도 들었을 텐데. 왜 지금 얘기하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감독이 안전하게 조심히 타라 하는데, 그게 되려면 최소한의 보험이 가입돼 있어야 하잖아요. 이미 일본엔 왔고, 이걸 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까지 고민했죠."
보험 가입비는 한 명당 고작 2만원. 통상 보험을 들어줘야 할 주체는 대한 장애인사이클연맹이었다. 국가대표이며, 국제대회 3관왕인 선수인데, 보험 없이 경기에 출전하게 됐다. 그 말은, 사고가 났을 시 고스란히 정빈씨와 선씨가 비용을 다 책임져야 한단 의미였다.

그리고 운이 나쁘게도, 경기 당일 정말 큰 사고가 난 거였다.

선씨가 크게 다쳤다. 그는 처음에 일시적인 거라 생각했다. 다시 괜찮아질 거라 여겼다. 주변을 보려 했으나 평소와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1차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CT를 찍고 의사들이 테스트 했다. 여기, 여기 감각 있느냐고. 감각이 없었다. 그제야 선씨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진짜 심각하게 다쳤구나, 하고.



'응급 수술' 후에도 "내 오른손이 어딨어요?" 감각이 없었다


응급이었다. 경추(목뼈) 골절, 쇄골 골절, 요추(허리뼈) 골절까지. 1차 병원에서 해결이 안 돼 헬기로 긴급 이송됐다. 사이타마현 종합의료센터로 갔다. MRI를 찍었다. 일본인 의사가 말했다.

"환자분 정말 크게 다친 겁니다. 당장 수술해야 해요. 가족이 있으신가요."

선씨의 아내, 강정숙씨. 정숙씨는 당시 회사에 출근해 있었다. 창고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릴 듣자마자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단 걸 알았다. 이틀 전 안 좋은 꿈을 꿨던 게 생각났다.
"하늘이 무너졌어요. 엄청 무서웠죠. 살아만 있으면 좋겠다, 막 그랬었어요."

남편을 빨리 수술해야 한단 말에, 정숙씨는 구두로 동의했다. 그날 밤 10시 넘어 일본에 도착했다. 새벽 두세 시쯤 수술이 끝났단 얘길 들었다. 면회 시간 10분. 그래도 목소릴 듣고 머리는 괜찮단 생각에 안도했단다.

"내 오른손 어딨어요? 왼손은요?"


수술 후 깨어난 선씨는 팔다리 느낌이 여전히 없었다. 물컵을 잡는 것, 간지러운 곳을 긁는 것, 아픈 것, 베개를 고쳐 베는 것까지 다 간호사를 불러야 했다.



수술비 4000만원…병원비 두려워 무리해 돌아오다 호흡 곤란까지


그 과정에서 정숙씨 홀로 다 감내해야 했다. 대한 장애인사이클연맹에서 지원해준 건 1차 병원에서 받은 검사비 정도였다. 정숙씨가 연맹 사무국과 연락했으나 "알아보고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단다.

당장 수술비와 입원비가 천문학적으로 쌓여갔다. 당장 급했던 경추 수술비만 4000만원이 나왔다. 원래는 일본에서 어깨 수술까지 빨리 받는 게 좋다고 했으나, 그러다간 병원비가 1억원까지 늘어날 판이었다. 이를 막아줄 보험도, 연맹 지원도, 아무것도 없었다.

선씨는 선택지가 없었다. 한국에 빨리 돌아가야 했다. 비즈니스석을 빨리 끊었다. 12월 8일 밤 비행기였다.
돌아갈 무렵 일본 병원에서 물었다. 누가 병원비를 낼 거냐고. 그래서 그게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연맹 주소, 연락처를 남겼다. 3월 말까지 내기로 하고 돌아왔다.

비행시간 3시간. 좌석 복도가 좁아, 선씨의 몸을 구기다시피 해서 들어가야 했다. 부상 때문에 등을 쭉 편 상태에서 들어가야 하는데 욕조 같은 공간이라 불가능했다. 그러니 치료비 걱정만 없다면, 휠체어에 탈 수 있는 정도까진 일본에서 회복한 뒤 한국에 오는 게 맞는 거였다. 머리와 등이 동그랗게 구겨지자 선씨가 호흡 곤란이 왔다.

"진짜 숨이 안 쉬어지니까 정말 죽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너무 아프더라고요."



정빈씨도 골절 치료, 전부 자비로…"국가대표도 이리 보호가 안 된다면"


선씨와 정숙씨는 한국에 어렵게 돌아왔다. 원주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처음, 일주일 동안에는 몇 분에 한 번씩, 밤낮없이 정숙씨를 찾았다. 물 좀 달라고. 갈증에 시달리고 소변을 수도 없이 빼냈다. 잠 한숨 제대로 못 잤다.

그의 자전거 동호회 친구 남재경씨는, 선씨가 한국에 올 때부터 공항에 마중 나가 있었다. 그런데 2주가 지난 뒤에야 선씨가 재경씨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오랜만이라고. 그제야 정신이 든 거였다.

정빈씨도 심한 외상과 치골 골절을 당했다. 의사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고 했다. 여전히 자전거 안장에 앉긴 어려운 상태라 치료를 받고 있다. 비용은 다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 정빈씨는 이렇게까지 지원이 안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단다. 그 역시 상처를 받았다고.

"아무리 보험이 안 들어져 있어도, 사실 제가 사적으로 시합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당연히 지원될 거라 생각했었죠. 제가 국가대표면 앞에 앉은 파일럿도 국가대표거든요. 국가대표도 이렇게 보호가 안 되면 누가 사이클을 하려고 하겠어요."

대한 장애인사이클연맹이 승인하고, 대한장애인체육회에도 보고된 경기. 국가를 대표했으나 2만원짜리 보험도 없었고, 그러다 악운이 겹쳐 사고를 당했다. 일본에서 미지불한 수술비 4000만원은 여전히 내지 못했다. 기한이 3월 말까지다. 선씨가 한국에서 치료받고 재활하느라 쓰는 비용도 다 자비로 내고 있다. 정빈씨의 눈이 되어 함께 달려보고자 했던 '대가'가 그랬다.



연맹은 모금해서 2000만원 전달…아직도 "내부 논의 중"


연맹은 여전히 논의 중이라고 했다. 자체 예산이 아닌, '모금'을 통해 선씨에게 지난달 25일 2000만원을 선씨에게 전달한 게 전부다. 선씨는 그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예산이 없으니 성금을 모아 널 도와주겠다 하시는데, 사실 이게 구걸이나 그런 게 아니고요. 명확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연맹과 체육회와 정부 차원에서 당연히 지원되는 부분을 받고 싶단 입장인 거지요.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게, 그동안 없었던 것들에 대한 지원책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연맹 입장은 뭘까. 대한 장애인사이클연맹 사무국장은 "연맹의 1년 계획 안에 있던 대회가 아니라, 일본에서 초청한 대회"라고 했다. 예산이 없고, 지원해줄 수 없는 이벤트성 대회라 선수들에게 본인 부담이라고 알렸단 거였다. "연맹 규정에도 의무적으로 보험을 들어줘야 한단 부분은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개인적으로 보험을 들어야 한단 내용이, 선수들에게 알릴 때 빠졌다고 했다.

경기 전날에야 보험을 안 든 사실을 알았던 것에 대해서는 "다른 선수 중엔 김포공항에서 인식하고 간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선씨는 "감독이 일부 인원에게만 보험 미가입 사실을 얘기한 것 같다. 정빈이랑 저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남은 병원비 4000만원과 그 외 지원에 대해서도 선명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사고 대책 위원회를 꾸려 논의 중이라고만 했다. 연맹 사무국장은 "일본 주최 측에 문제점이 있었는지 요청한 게 있고, 병원비 감면을 해주든 내지 않게끔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해결을 안 해주면 연맹이 지원할 건지 추가로 묻자 "그 부분까진 좀 더 논의해야 한다"고 답했다.



눈이 되어준 형을 위해…'목소리'가 되었다


탠덤사이클은 2인 3각과 비슷하다. 호흡이 안 맞으면 그저 둔하고 불편하다고. 그러나 선씨와 정빈씨는 '사이클이 정말 재밌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됐단다. 그만큼 서로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무더운 여름에도 땀을 함께 흘렸다. 서로 배울 게 많았고 기록도 좋아졌다. 그러니 사고를 당한 파트너를 보며 정빈씨 심경이 어땠을까.
"정빈이가 '누나, 저 선수직 걸었어요' 하더라고요."

선씨 친구가 말했다. 정빈씨가 아픈 선씨를 대신해, 그만큼 목소릴 내어주고 있다고. 대한 장애인사이클연맹 소속인 그가, 연맹을 향하여. 어찌 보면 힘들텐데도 그는, 국회에서 최근 기자회견을 할 때도, 눈을 감고 묵직하게 자기 의견을 또박또박 얘기했다.
그러니 눈이 되어준 그를 위해 이번엔 정빈씨가 목소리가 되어주고 있었다. 선씨를 향한 미안함이 컸단다. 일본 경기에 함께 나가자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흔쾌히 수락했던 좋은 형이었기에.

"함께 나가자고 물었던 것 자체가, 저 자신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형이 저 때문에 크게 다쳤단 생각이 들어서요. 정말 자전거를 사랑하는 분인데…크게 사고가 났고, 이후 수습하는 과정에선 연맹은 나몰라라 하는 식이고요. 2018년부터 국가대표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 그게 너무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12월 8일. 선씨가 일본서 응급 수술하고 돌아왔을 때, 먼저 귀국했었던 정빈씨가 마중을 나갔다. 둘은 오랜만에 보는 거였다. 미안해하는 정빈씨에게 선씨가 이렇게 말했단다.

"정빈아, 네 잘못이 아니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너는 운동 해오던 것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라."
선씨에게 끝으로 물었다. 이리 크게 다쳤는데, 파트너로 일본 대회에 나간 걸 후회한 적 없느냐고. 여전히 감각도 돌아오지 않아 힘든 선씨가 분명히 대답했다.

"아뇨, 전혀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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