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설명해줘도 "알아서 해주겠지" 사인 휘리릭…투자자 책임 커진다

머니투데이 이창섭 기자, 권화순 기자, 김남이 기자 | 2024.02.12 09:00

[MT리포트]금소법으로 바라본 ELS 사태(下)

편집자주 |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3년 만에 수조원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사태가 터졌다. 금소법의 형식과 절차만 강조하다 보니 금융회사는 소비자 권익증진이란 근본정신을 잊었다. 금융상품을 올바르게 선택해야 하는 '자기책임 원칙'을 인식 못한 소비자도 '비싼 수업료'를 내야 할 처지가 됐다. '껍데기'만 지켜진 금소법으로 ELS 사태를 바라봤다.



"우리 김대리가 알아서 해주겠지"… 홍콩 ELS, 투자자 책임 어디까지?


③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소비자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2024.01.19.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치매를 앓은 80세 노인은 손실 전액을 배상받지 못했다. '투자자 자기 책임' 원칙에 따라 최소 20%는 고객 잘못도 있다고 봐서다. 이번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는 소비자 책임이 더 높아질 전망이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 시행에 따라 형식적인 불완전판매가 줄어든데다 금융소비자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판매사 직원이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 수 있는 셈이다.

◇DLF 사태, 배상률 최소 20%에서 80%까지

11일 금융업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금감원)은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홍콩 ELS) 불완전판매의 유형별 사례를 정리하고 배상 기준을 고심 중이다. 핵심은 투자자 책임이 어디까지 인정하느냐다. 2019년 대규모 손실을 불러온 DLF 사태에선 투자자 최소 책임 비율이 20%였다.

2019년 당시 금융당국은 불완전판매 DLF 상품의 손실액 기본 배상 비율을 55%로 설정했다. 투자자 성향을 조사해 그에 맞는 상품을 권유하는 '적합성 원칙' 위반 시 30%, 은행 내부 통제가 부실했다면 20%, 초고위험 상품 특성을 고려해 다시 5%가 붙으면서 55%라는 기본 배상 비율이 정해졌다.여기에 개인별 가감 요인을 계산한다.

치매를 앓는 80세 노인에게 DLF 상품을 판매한 사례에는 최대 배상 비율인 80%가 적용됐다. 금융당국은 전액 배상은 허용하지 않았다. '투자자는 선택에 따라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최소 20%는 고객 책임도 있다고 판단했다.

◇자기 책임 원칙 인식 부족… "투자자 책임 비율 높아질 것"

이번 홍콩 ELS 손실 배상도 기준을 정한 뒤 유형별로 비율을 가감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 최소 책임 비율은 20%보다 높아질 전망이다. DLF 사태 이후 금소법이 제정·시행되면서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이 강화됐다. 동시에 금소법은 제8조에서 투자자 스스로의 책임과 노력을 강조했다. 특히 제8조 2항은 "금융소비자는 스스로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투자자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문구가 법에 기재된 것은 금소법이 유일하다.

이번 홍콩 ELS 사태가 금융소비자의 자기책임 원칙이 세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소법이 제정된 이후 금융회사는 형식과 절차를 준수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 왔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안전하니 투자하라"는 은행 창구 직원 말만 믿고 스스로 필요한 지식과 정보 습득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자기책임 원칙하에 투자한 사람들과 그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적합성, 설명의무 위반은 각각의 쟁점으로 따로 봐야한다. 일방 하나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ELS는) 예적금이 아니고 금융투자상품이기에 당연히 투자자 책임이 있고 과거 파생결합증권(DLF), 사모펀드 사태 등 상품 자체가 사기인 경우와 같이 볼 건 아니다"고 밝혔다. 2019년 DLF 사태때도 전체 가입 사례의 절반가량만 불완전판매로 분류됐다.

이정환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금소법 도입 이후 소비자 책임 부분도 강화됐기에 금융기관의 배상 책임은 조금 덜할 것"이라며 "강화된 법률 아래서 은행이 위험성을 고지하고, 고객의 사인을 받는 등 책임을 다하려고 했기에 배상 비율의 평균이나 하단은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우선 불완전판매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불완전판매가 없었다는 전제하에선 과거 20%보단 투자자 책임 비율이 높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콩ELS 자율배상 압박받는 은행들…"당국 가이드라인 먼저 나와야"


④자율배상안 못 내놓는 은행의 속사정

홍콩 H지수 기초 ELS(주가연계증권) 관련 금융당국의 자율배상 압박에 은행권이 고개를 젓는다. 판매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선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후 자율조정' 방식으로 가야한다는 의견이다. 금융감독원의 배상기준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사가 먼저 자율배상 카드를 꺼내면 수조원대 과징금 부과되고 자칫 배임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지난 7일까지 H지수 ELS에서 발생한 총 손실 규모는 약 6630억원이다. 손실률은 53.8%에 이른다. 손실은 2021년 H지수 ELS 판매량의 82%를 차지한 은행권에서 대부분 발생했다. H지수 ELS는 올해 상반기에만 약 10조2000억원 규모가 만기를 맞는다.

실현된 손실 규모가 커지면서 시장의 관심은 배상안에 쏠린다. 특히 지난 5일 이복현 금감원장이 "불법이냐 합법이냐를 떠나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손실액을 분담했으면 좋겠다"라고 발언하면서 은행권은 자율배상 부담은 커졌다.

금감원이 이달 중 가이드라인을 내놓기 전에 금융사가 먼저 자율배상 방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소비자가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돕자는 취지다. 다만 이 원장은 "업권에서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할 것은 아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압박에도 은행권은 먼저 자율배상을 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근 KB금융지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ELS 손실 대응 방안'을 묻는 말에 국민은행 관계자는 "아직 금감원 검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손실 배상과 관련해서는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과거 DLF(파생결합펀드) 사태 때 금융사가 자율조정을 진행했지만 우선 분조위가 배상기준을 마련한 후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라임펀드 때도 분조위에서 배상기준을 마련하고, 금융권의 자율조정이 이뤄지도록 했다.

당시 배상금 일부 선지급한 사례도 있으나 이번 ELS와는 성격이 다르다. 당시 환매연기 사모펀드는 펀드가 만기 돼 손해가 확정되지 않으면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가 없는 구조였다. 이에 은행에서 미상환금액을 모두 손실로 보고 배상을 진행한 뒤, 사후 다시 정산하는 방식을 가졌다.

반면 ELS는 H지수에 따라 배상 전 원금 회수율이 높아질 수 있고, 현재 기준으로 환매시 원금의 절반가량을 돌려받기 때문에 배상 기준이 나오기 전 선지급의 의미가 크게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불완전판매가 있었다면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른 '위법계약해지권'을 이용할 수도 있다.

특히 은행은 '배상'이라는 점에서 자율배상을 진행할 경우 불완전판매를 인정하는 모습이 된다는 점을 경계한다. 향후 분조위나 소송, 금융당국 징계 등에서 은행이 불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은행권은 이미 유명 로펌들과 함께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이다.

ELS 가입자가 수십만명에 달하는 것도 배상을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불완전판매가 있더라도 그 유형이 정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율배상에 나설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배상 방식에 따라 은행 수익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배임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베스트 클릭

  1. 1 항문 가려워 '벅벅'…비누로 깨끗이 씻었는데 '반전'
  2. 2 선우은숙 "미안합니다"…'유영재와 신혼' 공개한 방송서 오열, 왜
  3. 3 "내 딸 어디에" 무너진 학교에서 통곡…중국 공포로 몰아넣은 '그날'[뉴스속오늘]
  4. 4 여고생과 성인남성 둘 모텔에…70대 업주, 방키 그냥 내줬다
  5. 5 심정지 여성 구하고 홀연히 떠난 남성…알고 보니 소방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