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신분증 하루 5000건 잡는다…美금융권 줄선 스타트업 [월드콘]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 2024.02.11 09:32

신분 위조 대출사기 검증하는 스타트업 센티링크

편집자주 | 전세계에서 활약 중인 '월드' 클래스 유니'콘', 혹은 예비 유니콘 기업들을 뽑아 알려드리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게 있었나 싶은 기술, 이런 생각도 가능하구나 싶은 비전과 철학을 가진 해외 스타트업들이 많습니다. 이중에서도 독자 여러분들이 듣도보도 못했을 기업들을 발굴해 격주로 소개합니다.

미국 신용 검증 스타트업 센티링크를 공동창업한 나프탈리 해리스 CEO(왼쪽)와 맥스 블룸펠드 COO. /사진=센티링크 홈페이지 갈무리
#코로나19 팬데믹이 미국을 강타한 2020년, 플로리다 주민 하산 하킴 브라운은 700명 분의 위조신분과 유령회사, 기업계좌를 준비했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고용을 유지한 사업주들을 위한 대출 지원을 노리고 사기를 준비한 것. 브라운 일당은 위조신분으로 미국 중소기업청과 은행에 대출을 신청해 2000만달러(265억원)를 뜯어냈다. 지난해 6월 포브스 보도에 따르면 브라운은 결국 덜미를 잡혀 징역 60개월을 선고받았다.

브라운은 2018년에도 같은 수법으로 텍사스 은행에 사기 대출을 신청해 100만달러(13억원)를 타낸 전력이 있었다. 브라운은 분실된 신분증을 통해 미국의 주민번호 격인 사회보장번호를 알아낸 뒤, 이 번호로 신용카드 결제 등 금융거래를 일으켜 신용점수를 쌓았다. 점수가 충분히 쌓이면 은행 여러 곳에 거액의 대출을 신청하고, 대출 승인이 나면 돈만 챙겨 종적을 감추는 식이다. 신용점수를 쌓는 과정에서 명의가 도용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가지 않도록 금융거래를 거의 하지 않는 미성년자, 가정주부, 수감자들의 사회보장번호만 골라 사용했다.


미국 기관도 속았다…265억 뜯어낸 신종 금융사기


위조 신분을 이용한 사기 범죄 피해는 날로 규모가 커지고 있다. 금융전문 리서치업체 아이티 노바리카에 따르면 미국 금융기관이 입은 피해액은 2017년 8억달러에서 2022년 24억달러로 5년 사이 3배 증가했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서 위조된 신분증으로 1억5000만원의 대출을 실행했다가 적발된 사례가 지난해 3월 한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 금융사들은 신분을 위조당한 피해자인 오모씨에게 원리금 상환을 요구하다 언론 보도가 나오자 원리금을 받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신용 검증 스타트업 센티링크(Sentilink)는 이런 금융사기범들을 전문으로 감시하는 기업이다. 브라운은 텍사스 은행 외에도 여러 은행에 사기 대출을 시도했으나, 센티링크가 잡아내면서 피해는 더 커지지 않았다. 당시 센티링크는 서로 다른 사회보장번호를 가진 여러 대출 신청인이 같은 집 주소를 쓴다는 점을 수상히 여겨 대출을 막았다.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2017년 센티링크를 설립한 나프탈리 해리스 CEO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신분을 들고 기관을 속인다는 건 정말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해리스 CEO와 공동창업자 맥스 블룸펠드 COO가 이런 종류의 사기 행각을 처음 접한 건 2016년. 당시 금융 플랫폼 어펌에 재직 중이던 두 사람은 대출 신청인 중 12명이 같은 사회보장번호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포착했다. 이들은 사기 대출이라고 보고 전문가 자문을 구했으나 믿어주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해리스 CEO는 "신용점수는 정확히 측정되기 때문에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럴 리 없다", "당신들이 뭔가 착각한 것"이라는 전문가 반응은 사업을 결심한 계기가 됐다. 일론 머스크와 함께 페이팔을 공동 창업한 맥스 레브친 어펌 CEO는 이들의 아이디어를 듣고 사업을 독려했고, 시드머니 유치부터 센티링크를 밀어줬다. 센티링크는 '디테일'을 무기로 사업을 넓혀나갔다. 인공지능(AI), 머신러닝을 통한 자동화가 금융계의 화두지만 자동화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다는 게 센티링크의 철학이다.


모두가 "AI 자동화" 외칠 때 '수작업' 고집한 역발상


센티링크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와 사기 사건 전문 대응팀이 구축한 모델을 이용해 신분 위조를 판독한다. 0부터 999점까지 점수를 내며 점수가 높을수록 사기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대출 신청인의 전화번호가 기존과 다르게 기재된 경우, 신분위조일 수 있다고 보고 기관에 통보한다. 금융기록상 나타나는 행동 패턴도 분석한다. 운전면허증이 없는 사람이 차량을 리스한 기록이 발견되면 신분위조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독하는 식이다. 판독 과정은 대부분 자동화돼 있지만, 모델 구축은 사기 사건 수만 건을 분석한 경험이 있는 대응팀 몫이다. 판독이 나온 사건도 추가 검토가 필요한 건으로 분류되면 별도로 대응팀 심사를 받게 돼 있다.

블루펠드 COO는 지난해 6월 포브스 인터뷰에서 "AI가 알아서 잡아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큰 오해"라며 "센티링크는 AI를 인간이 하는 수작업을 빠르게 재현해 처리 규모를 키우는 수단 정도로 보고 있다"고 했다. 해리스 CEO는 지난해 3월 포브스 인터뷰에서 "수작업으로 직접 신용 거래 내역을 검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센티링크는 매주 목요일 직군 구분 없이 전직원이 모여 1시간씩 위조신분 검증 작업을 실습한다고 한다. 지난해 3월 기준 직원 수는 75명이었다.

센티링크 직원들이 회의 중인 모습. /사진=센티링크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해 3월 포브스 인터뷰에서 센티링크는 은행, 신용협동조합 등 200곳 넘는 미국 금융기관과 계약을 맺고 신용 검증 업무를 처리 중이라고 밝혔다. 센티링크는 하루 100만 건 이상의 신분검증 업무를 처리하며 이중 신분위조로 적발되는 건수는 매일 5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포브스와 피치북에 따르면 센티링크는 2019년, 2021년 펀딩을 통해 총 1억5500만 달러(2058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2021년 투자금 모집에서 기업가치는 4억3000만(5711억원) 달러로 측정됐다.

센티링크의 꿈은 신분위조 사기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해리스 CEO는 포브스 인터뷰에서 "신분위조로 피해를 입는 경우가 너무 많다. 당연히 누려야 할 금융 접근성을 누리지 못해 안타까운 길로 빠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반드시 고쳐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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