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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팔아치우더니 돌변…올 들어 '6조' 쓸어 담은 외국인, 이유는━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외국인들은 한국경제의 한계와 정책 불확실성, 미진한 주주환원을 이유로 주식을 팔아 치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포함된 전자전기 업종을 제외한 외국인 주식 보유율 비중(시가총액 기준)은 코스피와 코스닥이 각각 32%, 8.8%로 10년내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2020년까지만 해도 40%(코스피) 선을 넘나든 수치다.
지난 연말 상황도 그렇다. 골드만삭스와 UBS만 한국증시 비중확대를 제시했을 뿐 HSBC와 씨티, 모건스탠리 등 대부분 외국계 증권사들이 중립의견이었다. HSBC는 올해 한국증시 EPS(주당순이익)가 2023년 대비 60% 늘어나더라도 매력적이지 않다고 했다. 상승폭은 크지만 기저효과일 뿐 2022년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큰 변동성을 문제로 지적했다. 외국인들의 셀 코리아가 유지된 배경이다.
한국증시를 바라보는 외국인 스탠스가 바뀐 것은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윤곽을 드러내면서부터다. 한국기업들은 대주주를 제외한 투자자들과 이익을 나누는데 인색하고 이 때문에 주가가 낮게 형성되고 있다는 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상장사의 주요 투자지표(PBR·ROE)를 시가총액·업종별로 비교 공시 △상장사에게 기업가치 개선 계획 공표 권고 △기업가치 개선 우수기업 등으로 구성된 지수개발 및 ETF 도입 등을 비롯한 대안을 담을 전망이다.
이 결과 최근 증시에선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낮은 업종이 동반급등했다. 지난 2일 코스피 시장에서 주가가 오른 종목은 713개로, 하락 종목(182개)보다 4배 가량 많았다. 그룹 지주회사를 비롯해 금융사, 완성차, 보험사 등이 우선 거론되지만 사실 한국증시에 상장된 대부분 종목이 저평가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외국계 투자자들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한국증시의 추가적 상승을 이끌 중요한 촉매제"라고 평가했다. CLSA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름과 진취적인 계획을 뜻하는 '이니셔티브(initiative)'라는 단어를 결합한 '유니셔티브'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대안이라고 내다봤다.
CLSA는 최근 보고서에 "극단적 저평가(딥밸류 주식) 상태인 한국 주식 종목에 대해서 정부의 노력이 주가 상승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주식을 부양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고 기대했다.
유니셔티브는 지난 해 초부터 일본 정부가 자국 증시 상승을 위해 했던 정책들과 닮아 있다. 도쿄 거래소의 PBR 1배 이하 상장사 주주가치 제고 방안 요구,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의 월간 등재와 일본 금융 당국의 JPX Prime 150 벤치마크 신설, 기관 투자자 장려 정책 등이다. 이를 통해 50%가 넘었던 PBR 1미만 기업 비중이 44%로 줄었고, 배당확대를 유도해 일본증시가 사상최고가를 경신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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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증시보다 야박한 박스피…자사주만 태워도 '코스피 3600'━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코스피 지수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95배를 기록했다. PBR은 순자산(자본) 대비 시가총액이 얼마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PBR이 1미만이라는 것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기업가치가 그 기업의 자산가치보다 저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스피 시장의 PBR은 지난 수십년 간 평균 1배 안팎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나라 증시와 비교해도 저평가 상태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5월 기준 코스피 지수 PBR은 1배로 주요국 증시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가장 높은 미국(4.2배)과는 4배 이상 차이가 났고 저성장의 대명사인 일본 증시(1.4배)보다도 낮았다. 주요 신흥국과 비교해도 인도(3.2배) 대만(2.2배) 태국(1.9배) 브라질(1.5배) 중국(1.4배) 등 대다수가 한국보다 높았다.
장기 시계열로 봐도 마찬가지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간 한국 증시의 PBR은 평균 1.2배로 주요 45개국 증시 중 41위를 기록했다. 선진국 평균(2.2배)나 신흥국 평균(2배) 대비 거의 절반 수준으로 디스카운트된 셈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으로 주주환원을 꼽았다. 한국 상장사의 주주환원율(배당+자사주 매입) 순위는 지난해 주요 45개국 중 40위를 기록했으며 거의 매해 40위권 밖에 머물렀다. 주주환원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PBR도 비례해서 높게 나타났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미흡한 주주환원,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추정된다" 설명했다.
단순하게 PBR은 시가총액을 자본으로 나눠 계산한다. PBR이 낮다는 건 분자인 주가가 낮거나 분모인 자본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본을 이용해 투자를 해서 돈을 벌거나 벌어들인 돈을 주주들과 나눠야 한다. 자본을 쌓아둔다고 무조건 좋은 기업이 아니란 의미다.
PBR은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ROE(자기자본이익률)와도 연관된다. ROE는 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이다. 적은 자본으로도 높은 이익을 내면 그만큼 ROE는 높아진다. 자본을 효율화하는 만큼 PBR과 ROE는 동시에 개선될 수 있다.
자본을 효율화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이다. 배당은 잉여자본을 주주들과 나누기 때문에 그만큼 총자본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자사주 매입은 유통주식수를 줄이는 효과가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소각을 해야 발행주식수와 자본의 감소로 BPS(주당순자산가치)와 EPS(주당순이익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S&P500 기업 중에서 지난 3년 간 발행주식수를 연평균 3% 이상 줄인 기업은 주가가 연평균 8.3% 올라 나머지 기업들 대비 아웃퍼폼(수익률 상회)했다"며 "미국 기업의 주주환원 정책은 미국 증시가 중장기 우상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한국 상장사의 펀더멘털이 유사하다는 가정하에 자본효율성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주가부양에는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스피 PBR이 현재 0.95배에서 1배로 개선된다고 할 때 단순계산으로도 코스피 지수는 2760까지 오를 수 있다. 일본 증시 평균인 1.4배까지 개선된다고 하면 이론상 3860도 가능하다. 코스피 지수가 역대 최고치였던 2021년 6월25일(3316.08) 당시 PBR은 1.3배였다.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은 자사주 소각만으로도 코스피 지수가 3600선을 넘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2월말 기준 국내 상장사의 미소각 자사주는 약 74조원인데 이를 5년에 걸쳐 균등 소각한다면 배당성장할인 모형으로 계산한 코스피 공정가치는 기존 2590에서 3210으로 개선된다는 분석이다. 소각 기간을 3년으로 단축하면 공정가치는 3620까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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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증시, 부활 비결은 '밸류업'…코리아 디스카운트도 끊을 수 있을까?━
◇일본처럼 '저PBR주 밸류업' 나선 한국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저(低) 주가순자산비율(PBR, Price to Book-value Ratio)' 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상품 지수를 개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올해 업무보고에서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작업이다.
PBR 1배 미만 저PBR주, 저평가 고배당주 등이 지수에 편입될 전망이다.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제고에 방점이 찍힌 정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관련 기업들이 속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는 올해 1분기 중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조만간 지수를 비롯한 구체적인 운영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배당액을 확정한 이후 배당받을 주주를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상장사 배당절차 개선과 국내외 기업설명회(IR) 강화도 추진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업무보고 기자간담회에서 "상반기 중 뉴욕을 방문해 우리의 밸류업 노력 등 한국 시장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시다의 '新자본주의'와 엔화약세 효과… 정책의지가 관건
도쿄거래소의 증시 부양책은 일본 기시다 내각의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이 정책은 일본 내 자금흐름을 안전자산에서 모험자본으로 이동시키고,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혁신성장산업 육성을 통해 가계와 기업의 부를 증대시키는 게 목표다. 때마침 엔화 약세 기조가 이어지면서 외국인 투자금이 일본 증시로 몰렸다. 이에 따른 상승효과에 힘입어 일본 증시는 3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을 준수하는 기업에 대한 우량 지수를 개발하고, 이를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운용 벤치마크로 활용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며 "우량 지수에 편입되지 못하는 기업에 대해선 네임 앤드 셰임(Name&Shame, 공개적 망신주기) 리스트를 공개해 압박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국내 증시의 저PBR 장세 지속 여부는 ROE를 고려한 벤치마크 자금 유입 규모, 정책 자금의 신규 벤치마크 활용 유도 강도에 달렸다"며 "저PBR 종목군은 성장주와 대척점에 있다. 성장주가 상승 압력을 받을 때 부침 정도는 겪을 수 있다. 방향성 자체는 2월에도 우호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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