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빚의 나라…부채 디레버리징(축소)

머니투데이 박재범 경제부장 | 2024.02.07 04:25
# '부채도 자산이다'. 이젠 당연한 명제가 됐다. '돈 빌리지 말라'던 부모님 세대조차 빚과 함께 늙어간다.

빚이 반려자가 된 게 오래 전은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 2000년 전후만 해도 빚은 공포, 자체였다. 질병, 호환마마, 호랑이 못지않게 경계했던 게 '빚쟁이'였다. 빚은 죄이자 악이었다.

'노멀(normal·정상적)'한 상식이 깨진 것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다. 외환위기 때 고금리 처방으로 고통을 겪었던 우리는 색다른 해법을 접한다.

미국 중앙은행은 돈을 풀고 금리를 낮췄다. 선진국들도 보조를 맞췄다. 돈줄이 막히면 일단 아껴야 한다는 처방은 고루한 것이었다. 돈이 없으면 돈을 더 넣으면 된다는 솔루션이 세상을 구한다.

낯설었던 '뉴노멀(New normal)'에 금세 익숙해진다. 최근 금리 인상 기조를 잠시 불어온 태풍 정도로 인식한다. 곧 고요한 바다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뉴노멀'이 '노멀'이 됐다면 간단하다. 하지만 희망, 바람, 기대와 현실, 미래는 다르다. 세계적 거시 경제 석학 찰스 굿 하트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는 지난해말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고금리' 표현부터 짚고 가자며 이렇게 말한다.

"현재 금리 수준은 1800년 이후 220여년을 볼 때 평균보다 약간 높은 정도다. 고금리로 볼 수 없다. 지금이 고금리라는 말보다 지난 30년간 금리가 이례적으로 매우 낮았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 역사적으로 이례적이었던 시기가 끝나간다는 것은 처방의 종료를 뜻한다. 뉴노멀 솔루션이 필요했던 이들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했거나 체질을 개선했을 것이란 의미다. 아니면 최소한 그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는 뉴노멀의 시대, 부채를 늘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가계대출은 1759조1000억원이다. 판매신용(신용카드 대금 등)을 포함한 가계부채는 1875조6000억원 규모다. GDP(국내 총생산)의 100%를 넘는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7년 89.4%에서 2021년 105.4%까지 급등했다.


국제금융협회(IIF)가 내놓은 '세계 부채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조사 대상 34개국중 1위다. 1인당 평균 빚 9000만원을 안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40%, 2014년 80% 수준이던 가계빚은 한국경제의 뇌관이 됐다.

한국의 기업 부채도 GDP 대비 126%로 세계 3위 수준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1674개 상장사 중 이자보상배율이 1만인 기업이 710개로 42.4%를 차지했다. 전년대비 기업부도 증가율도 2위를 기록했다.

# 빚은 거품을 만들고 함께 팽창한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이웃나라 일본은 '부채 증가·거품 형성→거품 붕괴'의 늪에서 20년 넘게 고생 중이다. 부채 축소(디레버리징) 노력을 하지 않은 대가를 우린,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래서 걱정하고 조심한다. 하지만 결코 노력하지 않는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도 금융사는 금융당국의 금리 인하 요구에 반응한다.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은 '밑 빠진 독 물 붓기'가 된다. 서민 주거 안정이란 명분 하에 다양한 대출이 집행된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식단 조절·운동 등이 필수적인데 움직이지 않는다. '관리'에 주력할 뿐 고통과 마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정이 긴축을 꾀한다.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48.9%로 주요국 중 22위다. 재정이 마지막 보루라는 논리만 부여잡은 채 전체 부채 디레버리징 방안에 대한 고민도, 논의도 없다.

공교롭게도 재정이 건전하면 디레버리징이 어렵다. 재정이 너무 건전하다보니 민간부채가 늘어났다는 점을 모른 척 한다. 후대에 남겨지는 부담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나라의 대차대차표만 깨끗하다고 짐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다.

리차드 쿠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저서 '대침체의 교훈'에서 조언한다. "많은 의료비(국가 부채)를 부담하더라도 적절히 관리되고 호전된 경제를 물려받는 것이 부채에서는 자유롭지만(치료비가 생기지 않은) 어떤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심각한 상황에 처한 경제를 물려받는 것보다 바람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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