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리니지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하고,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위주로 개발해온 엔씨소프트에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이 같은 '엔씨 위기설'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10년 전, 20년 전에도 "엔씨소프트에는 이제 미래가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 당시와 지금의 위기는 어떤 게 같고, 또 어떤 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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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는 개고기 탕후루, 로제 개고기를 판다"━
여기서 개고기는 리니지로 대표되는 엔씨의 MMORPG 라인업, 그리고 이러한 게임들로 성공을 가져올 수 있었던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 등으로 해석된다. PC버전 리니지로 시작해 리니지2, 리니지M, 리니지2M, 리니지W 등으로 역사를 이어온 엔씨다. 블레이드앤소울, 아이온 등의 대형 IP(지식재산권)도 MMORPG 일색이다. 최근 내놓은 신작 TL 역시 마찬가지다.
엔씨는 자타공인 국내 MMORPG 1인자다. 우수한 개발 및 서비스 인력을 보유하고 있고, 실제로 안정적인 서비스와 끊임 없는 콘텐츠 생산 능력에 강점이 있다. 그런데 리니지의 성공 이후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리니지라이크'의 범람과 유저들의 피로감이 더해지며 정작 MMORPG 장르 자체의 인기가 사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엔씨가 이번에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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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20년 전에도 "엔씨는 망한다"━
2013년에도 위기설이 나왔다. 이때는 모건스탠리에서 '게임이 끝났다'(Game Over)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내며 '매도'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모건스탠리는 엔씨의 신작 게임들이 기존 고객을 갉아먹는 자기잠식 효과를 낸다는 전망과 함께 LoL(롤, 리그오브레전드)이 게임시장을 장악하고 엔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PC방 점유율이 30%에 육박하는 롤 때문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우려도 이어졌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갈 신성장동력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포함됐다.
결론적으로 20년 전, 10년 전의 위기설은 모두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엔씨는 리니지 시리즈에 부분유료화 모델을 도입하고 리니지2,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 등의 신규 IP를 시장에 내놓으며 되살아났다. 신성장동력이 안 보인다던 비판들은 신작 게임이 나와서 성공을 기록하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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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위기는 무엇이 다를까━
과거에는 리니지의 주요 유저인 '린저씨'들을 잡기 위한 신규 콘텐츠를 만들어내며 위기를 돌파했다. 하지만 이젠 린저씨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느껴지는 시점이 다가왔다. MMORPG 일색의 한국 게임시장에 질린 소비자들을 붙잡을 새로운 '한 방'이 필요한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는 게 2023 엔씨 위기설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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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도 놀고 있진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게임'이다. 기존 MMORPG 라인업을 굳이 무리하게 치우진 않는다. 대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한 시도들을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지스타에서 선보인 엔씨의 라인업들은 이 같은 노력의 과정들을 보여준다. 신작 7종 중 MMORPG는 TL뿐이었다. 슈팅게임인 '프로젝트 LLL', 서브컬처풍 수집형 RPG인 '프로젝트 BSS', 난투형 대전액션 '배틀 크러쉬' 등은 기존 엔씨의 문법과는 전혀 다른 게임들이다. MMORTS(다중접속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로 개발 중인 '프로젝트G'와 인터랙티브 어드벤처 '프로젝트M'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출시한 퍼즐게임 '퍼즈업 아미토이'도 마찬가지다.
엔씨 위기탈출전략의 핵심은 '새 장르' '새 지역' '새 고객'이다. MMORPG 유저가 아닌 이들을 끌어안아 고객군의 외형을 넓히겠다는 게 다양한 장르의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MMORPG라 하더라도 해외 시장을 공략하면서, 국내에서 써오던 것과는 다른 비즈니스모델을 내세워보겠다는 게 TL의 해외사징 공략법이다. 무엇보다 '린저씨'가 아닌 다양한 연령과 취향의 소비자들을 붙잡는 게 절실하다. 퍼즈업 아미토이의 경우 엔씨가 처음으로 만든 '전체 이용가' 게임이다. 또 신작 게임 대부분을 콘솔용으로도 만들어 PC·모바일을 넘어선 고객들을 받아들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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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들은 좋은데…기동성이 관건━
다만 이미 비대해진 조직 구성과 이에 따라 복잡해진 의사결정 체계가 신속한 개발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000년대 이후 IT업계의 개발 트렌드로 떠오른 '애자일'(Agile)한 운영이 힘들어졌다는 관측이다. 조직이 커지다보니 게임 기획 단계부터 완벽을 요구할 수 있다. 작은 조직들이 오히려 기민하게 움직이며 '로또 흥행작'들을 만드는 것과 대비된다.
게임도 조직 운영도 애자일하게 하려면, 우선 무게감을 줄여야 한다. 탱크를 타고 대규모 전투에 집중하던 엔씨가, 경보병으로 구성된 기민한 별동대를 만들어 시장을 두드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빨리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고, 피드백을 받아가면서 끊임 없이 신속하게 뜯어고치고 완성도를 높여가는 식이다.
대규모 인원이 투입된 프로젝트가 실패한다면, 조직에서 책임론이 불거지고 증권가에서 또 부정적 전망을 내놓으며 '게임은 끝났다'고 한다. 차라리 수십번 부딪히고 깨져도 문책 받지 않고, 해당 프로젝트를 엎어버리고 곧바로 다른 신작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어떨까. 30여년 전 멜빵바지 입고 골방에서 코딩만 하던 '팀 김택진' 같은 소규모 조직을 여러개 만든다면, 그만큼 엔씨의 다음 성공 가능성도 여러개로 늘어날 것이다. '세번째 엔씨 위기설' 역시 틀린 것으로 결론날지도 여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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