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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진 습격한 소년…중증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가능했다면━
유럽에선 중세까지 중증 정신질환자도 함께 어울려 살았다. 그러다 이들을 격리하기 시작한 게 근대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푸코는 설파했다. 그들 모두 위험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그들에게도 인권이 있다. 하지만 그들 중 극히 일부로 인해 누군가는 죽거나 다친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격리 여부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다.
지난 25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습격한 피의자 중학생 A군은 평소에도 친구들에게 콩알탄을 던지고 스토킹을 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A군은 최근 우울증 증상이 심해져 폐쇄병동 입원 권고를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 8월 경기 분당 서현역에서 '묻지마 칼부림' 테러를 저지른 최원종, 2019년 경남 진주시에서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칼을 휘둘러 5명을 살해한 안인득 역시 중증 정신질환 병력이 있으면서 사건 전까지 입원 치료를 한사코 거부했다. 중증 정신질환자들에 의한 강력범죄가 잇따르지만 국회에선 확실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중증 정신질환자 격리 관련 제도 개선 법안은 현행 '응급입원제'에 대한 보완 입법 정도다. 응급입원제는 급박한 상황에 한해 경찰과 의사의 동의에 따라 3일 간 입원치료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해 8월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응급입원을 의뢰하는 주체에 경찰과 구급대원을 추가한 것이 골자다. 현행 법은 정신질환자를 발견한 사람이 의사와 경찰 모두의 동의를 받아 병원에 응급입원을 의뢰하도록 돼 있다.
최 의원 이외에도 △임호선 민주당 의원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등이 응급입원제 보완 법안을 발의했다. 다만 최 의원 안은 물론 나머지 법안 모두 해당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뒤 제대로 논의 한 번 이뤄지지 않았다.
강제입원 여부를 법원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선진국형 제도인 '사법입원제'의 경우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처리가 무산된 뒤 21대 국회에선 아예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에야 보건복지부가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통해 사법입원제 도입을 위한 의견 수렴에 나서겠다며 밝히면서 비로소 논의가 시작됐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강제입원은 2명 이상 보호의무자의 신청과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전문의가 일치된 소견을 내놔야 가능하다. 응급입원 뿐 아니라 전문의 진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권한을 가지는 '행정입원' 등도 있지만 소송 등의 우려로 실제 강제입원이 이뤄지긴 쉽지 않다.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현재 청소년 정신질환 관련 정책은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3개 부처에 분산돼있다"며 "(청소년 건강관리를 위해) 상담과 예방, 치료, 관리 등 전주기를 아우르는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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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터질 때까지 발만 동동…문턱 높은 '강제 입원'━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습격한 만 15세 소년이 정신질환을 호소해 응급입원 조치되고, 지난해 분당 서현역에서 '묻지마 흉기난동'을 벌인 최원종이 2020년 '분열성 성격장애'로 진단받았지만 치료받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의료계에선 '강제 입원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황재욱(대한신경정신의학회 수련위원) 순천향대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입원 치료가 필요한 중증 정신질환 환자의 입원이 까다로워졌다"며 "정작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입원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 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의 핵심은 '강제 입원 문턱의 강화'다. 강제 입원 종류 가운데 가장 흔한 보호 입원의 경우 기존엔 보호의무자(직계혈족·배우자)가 신청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의 입원 소견만으로도 환자가 강제 입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뀐 개정법에 따르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인, 보호의무자 2인이 '모두' 동의해야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게 됐다. 전문의 가운데 1명은 국공립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한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여야 한다.
보호의무자 2인이 동의했더라도 문제는 또 있다. 환자를 병원에 데려오는 단계부터 쉽지 않다는 것. 환자가 정신질환 증상으로 난폭성을 띠는 경우 가족이 힘으로 제지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황재욱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사건·사고가 나야 경찰이 그때야 개입해 환자를 병원에 데려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사건·사고가 나기 전까지 환자가 협박하거나, 기물을 부수거나, 가정 폭력 직전까지 가더라도 경찰이 개입할 수 없어 사실상 주변인이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이유로 정신질환 치료를 손 놓고 있는 환자가 적잖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조현병 환자는 21만4017명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3575명은 1년간 조현병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청구내역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종성 의원은 "현재 국내 허가된 조현병 치료제는 총 397개다. 이 중에서 7개를 제외한 나머지 약제는 모두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2년 한 해만 조현병 환자 3575명이 사실상 약물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의료 급여 환자 수가, 하루 최대 5만1000원
이들이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것도 일이다. 정신과 전문병원, 종합병원 등의 정신과 병동이 점차 줄고 있어서다. 황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는 외과 계열과 달리 딱히 '수술'이 없고 약물 치료 위주여서, 인건비는 많이 들지만, 수익은 낮은 과로 손꼽힌다"며 "그러다 보니 병원 측에서 정신과 병동을 가능한 한 적게 운영하려는 추세"라고 토로했다. 게다가 정신과 병동엔 다른 진료과의 환자가 한 곳에 입원할 수 없어, 회전율이 낮고 공실률은 높다.
원래는 '약값'까지 포함돼 있었지만,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반발로 지난 2019년 6월 약값은 별도 청구할 수 있도록 빠졌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A씨는 "보호자 입장에선 환자를 장기간 입원시켜 병원에서 케어해주길 원하지만, 병원 입장에선 입원 병실료도 안 되는 값으로 환자를 받기는 힘들지 않겠나"라며 "정신과 단과병원 시설이 낙후되고, 치료 질도 떨어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지난해 정신질환 병력을 가진 이들의 흉기난동 사건이 잇따르자 법무부는 지난해 8월 4일,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법입원제란 법관의 결정에 따라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키는 제도다. 정신질환자 입원은 본인 의사에 따른 자의적 입원을 기본으로 하고, 환자가 입원을 거부할 경우 비(非)자의적 입원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학회 관계자는 "사법입원제라는 용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고려해 '국민안심입원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제안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의료계에선 정신질환 의료급여 환자에 대한 진료 수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B씨는 "정부가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를 필수의료 핵심으로 여겨,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약할 것으로 보인다"며 "정신질환 의료급여 환자에 대한 질 좋은 치료가 가능하게 하려면 진료 수가를 현실화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정신질환은 예방할 수 있으며,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또는 블루터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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